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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지만 멈춰 있진 않습니다.

몸은 제자리지만, 마음은 나아지는 중

by 다섯빛의 온기

오늘, 헬스장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혼났다.

PT 중간점검, 인바디를 체크 했고 그 결과는 에러였다.


“두 달 동안 뭐 하셨어요? 몸무게는 그대 로고, 체지방은 더 늘었어요.”


그 순간 얼굴에서 흐른 건 운동 후의 땀이 아니라, 뜨끔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단백질 꾸준히 챙겨 먹고, 물 자주 마시고,

간식 줄이고, 야식은 끊고.

그런데도 몸은 고집스럽게 제자리였다.

선생님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럴 거면 PT 등록비 반은 저 주세요. 제가 대신 운동할게요..

순간 억울함과 자책이 함께 올라왔다.

내가 게을렀던 걸까, 아니면 몸이 지나치게 솔직한 걸까.

농담 같은데, 농담이 아니었다.

순간 억울함과 자책이 함께 올라왔다.

내가 게을렀던 걸까, 아니면 몸이 지나치게 솔직한 걸까.

어쩌면 나는 ‘나아가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제자리에서 뛰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퇴근 후 PT를 한다는 건 직장인에게 거의 투잡을 뛰는 일이다. 회사에서 이미 영혼을 반쯤 놓고 오는데 헬스장에서 나머지 반까지 탈탈 털린다.

운동 끝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오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식단도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점심은 일반식, 가끔은 치팅데이.

가끔 몸이 원하는 것도 먹어줘야 하니까.


두 달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몸이 그대로인 걸 본 선생님이 답답했을 거라는 건 안다.

그래 서운했다.


야근하고, 멘탈 쥐어짜고, 겨우 운동 갔는데

결과가 흐릿하면 “노력은 어디로 갔죠? 분명 제 건데요?” 이런 기분이 든다.


마치 지하철에 몸은 올라탔는데 가방은 플랫폼에 그대로 놓고 온 사람처럼.

뭔가 빠뜨린 것 같고, 뭔가 허전하고, 노력은 했는데 결과가 뒤에 남겨진 느낌.

웃기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기운 빠지는 그 묘한 상태.

그래도 몸무게는 숫자로 나오고 눈바디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서운함은 여기서 접기로 했다.


잔뜩 주눅이 들어 보였는지 선생님은

오늘은 웨이트 말고 런닝을 같이 뛰자고 하셨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런닝머신 위로 발을 올렸다.

2분 뛰고 1분 걷는 인터벌, 총 30분.

처음엔 선생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더 가빴다. 헛발질도 했지만, 정신없이 뛰는 것에 전념했다.


그런데 몇 번 반복하자 몸이 달라졌다.

힘들지만, 버틸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시계만 보며 ‘얼마 남았지…’ 했을 시간에 나는 내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것.

내 속도를 누군가가 함께 맞춰주는 것.

그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

그 순간,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 이분, 좋은 트레이너 쌤이셨다.


인생도 그렇다.

누군가가 옆에서 한 호흡만 맞춰줘도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덜 지친다.

나는 여전히 크게 달라진 사람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내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호흡 덕분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직장인의 삶이란 일과 운동 사이에서 하루 종일 협상하며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동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협상이라고 한다.

나는 그 협상에 자주 지지만,

이상하게 또 헬스장의 문을 연다.

오늘도… 오. 운. 완.
(오늘 운동 완료!)


sticker sticker

[엔딩크레딧]
(자막 제공: 체중계는 그대로지만, 마음의 근육은 매일 성장 중)
(특별 출연: 적신호 깜빡이는 체지방)
(협찬: 헬스장 계약서 6개월 약정, 그리고 내 의지의 근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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