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by 다섯빛의 온기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 '방문객'


얼마 전 체육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요트 탑승권을 벽에 붙여 두었다. 꼭 누군가와 함께 탈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앞으로 내 삶에 들어올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획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나의 포부이자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자세였다.


예전의 나는 늘 바람 앞에서 흔들렸다. 아마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먼저 중심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남자는 많이 만나봐야 안다.”
“경험을 많이 쌓아야 감이 생긴다.”
“사람은 부딪혀 봐야 안다.”
라고들 한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기질과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기보다는 조금씩 더 흐려졌다. 누군가를 알아간다기보다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자꾸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사람을 맞이하기도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잃어버렸고, 환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진시키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교도 시도도 멈추고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감정을 시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관계에
깊게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이후로는 사람들의 말보다 내 마음의 반응을 먼저 살피게 되었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너무 재지 말고 만나봐.”
“사람 관계는 원래 그런 거야.”


이제 그런 말들은 참고는 하되, 끌려다니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누군가의 속도보다 내 리듬을 지키는 쪽이 회복에 더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아마 이것도 회복의 한 장면일 것이다. 상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상처 앞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


그래서 나는 특정한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어떤 관계가 와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를 먼저 정돈한다. 들어올 자리를 쓸고, 머물 흔적을 상상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만큼의 준비를 요구하는 일이니까.


이제는 안다.

<방문객>이라는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그저 한 명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지금의 마음,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까지 함께 들어오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괜찮은 사람, 준비된 사람이 되려 한다.

앞으로 나를 스쳐 갈 모든 사람들을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함부로 기대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소모하지도 않으려 한다.
아직 완전히 단단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흔들리고, 마음은 쉽게 닳는다.


그런데도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이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아프지는 않다.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 도착한 가장 현실적인 위로다.


천천히, 조용히,
나는 사람을 맞이하는 태도, 환대를 배워가고 있다.



[엔딩 크레딧]

(자막 제공 : 여전히 흔들리는 하루 )

(협찬 : 환대 연습 중)

(감독 : 같은 방식으로 아프지 않기로 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