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선택한 유일한 가족

초록색 나이키

by 경주
경주야
내일은 계곡 있는 산으로
우리 등산 가자.

운동화 신고와.
나 운동화 없는데?
운동화가 없어?
응.
신던 운동화
지난번에 찢어져서 버렸는데
아직 안 샀어.
구두만 있어.




그가 내게 초록색 운동화를 내민다. 내 생애 최초의 나이키.

우리 이거 신고 놀러 가자.



그가 내게 넘겨준 초록색 나이키를 신던 날, 그와 등산을 갔다. 헉헉대는 내게 그는 등을 내민다. 창피하게 어떻게 업히냐고 묻자 아픈 척하라고 한다. 고개를 숙이면 너는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내 얼굴만 보이니 창피는 나의 몫인데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한적한 등산로. 그는 나를 업고 뛰듯 산을 올랐다. 그는 항상 유쾌했고 심각한 고민을 하는 법이 없었다. 사소한 선택에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나와는 많이도 달랐다. 왜 사는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의 사색적 질문을 하려고 하면 언제나 재빠르게 가벼운 화제로 넘겨버렸다. 그를 만나던 당시의 나는 물론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 밝고 맑은 영혼이었지만 기실 인생이 버거웠다. 그를 보며 어쩌면 그와 함께면 진실로 내가 가벼운 인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나에게 속았다. 그도 내가 쓴 가면이 진실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듣는 말은 외향적이라 것. 타인에게 나는 모든 일에서 긍정의 시그널을 찾아내고야 마는 씩씩한 사람으로 비친다. 사실 때로는 나도 내가 한없이 밝은 사람이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질 만큼 나의 주문은 강력했다. 가벼운 척 가면을 쓰고 살았으나 사실은 인생이 무거웠던 내가 선택한 그. 그와 나는 달랐다.



세상 모든 일이 책임이고 의무였던 나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러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연년생 육아, 가사는 모두 나만의 일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던 나.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모른척하던 그. 그의 무책임함이 견딜 수 없었다.


되짚어본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온전한 우리 부부의 힘으로 육아하고 싶어 휴직을 했음에도 연년생 육아를 돕겠다며 시어머니의 왕래가 잦아졌던 그때.(사실은 둘째가 아들이어서. 둘째도 딸이었다면 우리는 좀 달랐을까. 아니다. 나의 서툰 마음으로 언젠가 어디선가 터지고야 말 일이었다. 어머니는 좋은 분이시다. 다만 아들을 너무 사랑하셨을뿐.) 오시는 횟수는 한 달에 두세 번이었다. 한번 오시면 1주일씩 계셨다. 일주일 건너 한 번씩 오셨고 그때마다 주말을 꽉 채워 주무셨다.



어머니가 오시자 그는 조금씩 달라보였다. 어머니의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그를 무시했다. 멸시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고 그것을 말하지 못해 생긴 행동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많이 들어주던 나였지만 내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이 상당했다. 너의 변화가 낯설어가 아니라 당신은 틀렸고 나만 옳다는 아집으로 그를 대했다. 부정적인 표현이 시작되자 당신으로 인해 내가, 내 인생이 무너지고 있다는 날카로운 말들, 더 이상 당신은 나를 웃게 해 줄 수 없다는 절규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좋은 며느리 틀에 사로잡힌 나는 시어머니가 계시면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꾹꾹 눌러두었다가 가시면 전쟁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나는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해도 그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구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던 거다. 모든 집안일을 하는 것은 물론 손에 물이 닿지 않게 하겠다며 목욕을 시켜주고 나의 손톱까지 잘라주던 다정하고 세심한 그가 가정 일에 완벽하게 손을 놓은 것은.


생각해보니 7년의 연애기간 동안 난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데이트 장소는 대부분 내가 말했던 곳,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메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음식점에서도 늘 내가 먹고 싶은 것 두 가지를 고르라고 했었다. 늘 그랬으니 그도 나와 취향이 같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와 있는 동안의 그를 보니 나와는 다른 취향의 많이도 다른 사람이었다.


나를 구원하고 싶다던 그의 말을 어리숙하게도 믿었다. 그 시절 그는 나에게 커다란 산 같았다. 그도 마음이 어렸는데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구원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를 알지 못했다.


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초록색 운동화를 내게 내밀던 그에게 보여주었던 나의 환한 웃음. 당신으로 인해 내가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눈빛. 당신이 내 곁에 와주어 나의 인생이 더 가벼워졌다는 고마움.



내게 최선을 다해 주고도 늘 미안해하던, 상징성에서 벗어나 너무도 원초적인 접근으로 정말 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려는 단순한 그를 마주하며, 그와 결혼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행복해하던 시간. 그리고 그와의 모든 시간을 부정하고 그를 만났던 나마저 놓고 싶었던 암흑 같던 시간, 그리고 오늘.



태어나니 부모님이 계셨고 내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른 채로 내게 왔다. 선택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의 가족. 그러나 성격도 외모도 마음도 모두 내가 보고 선택한 유일한 가족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남편이다. 초록색 운동화를 내게 내밀던 빛나던 그 남자. 내 머릿속에서 걸어 나온 듯 완벽했던 그 남자. 다시 그가 빛날 수 있도록 그 시절의 그를 대하던 나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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