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셈 없는 그의 가성비

세일하면 직진

by 경주
경주야, 이것 봐.
86% 할인했어.
할인받은 금액이 100만 원에 가까워.
우리 돈 벌었다.



음.. 우리...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갔을 때는
돈을 썼다고 표현해주자.



경주야, 우리는 지금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지금 사둬야 해.
세일하잖아.



돈이 없으니 지금 충분히 많이 사야 한다는 그.





푸하하하하
왜, 왜?


너 엉덩이 다 보여.


아, 이 바지 이게 좀 커.



조금 큰 정도가 아닌데
바지가 줄줄 흐르는데?


그래도
이 바지 좋은 거야

그러네
이거 질감도 색감도 좋네.

푸하하하
허리 좀 숙이지 말라고.
이거 입고 밖에는 못 나가겠다.


어, 괜찮아.

벨트 하면 안 내려가.





우와, 돈 주고 엉덩이 보이는 바지 사는 클래스 보소.




그는 가성비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가성비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가성비가 좋으려면 내가 지금 당장 착용 가능한 제품을 사야 하지 않나. 그는 가성비를 따져 세일하는 제품을 찾아 신발이건 바지 건 코트 건 당장 쓸 수 없는 사이즈의 제품을 꼭 지난 계절 옷으로 구매한다. 나와 아이들의 신발을 자주 사 오는데 지금 당장 신을 수 있는 사이즈 맞는 신발을 사 오는 일이 드물다. 내게 265 나이키 에어를 내밀며 커플 운동화란다.

사이즈가 비슷해서 커플인 건가. 그의 셈 없는 가성비.



아울렛에서만 물건을 사는 그. 좋은 옷은 입고 싶고 그만한 돈을 쓸 여력이 없으니 아울렛에서 가장 할인율이 높다는 특정 시즌에 물건을 두둑이 산다. 문제는 어떤 바지는 훅을 잠글 수도 없고 어떤 바지는 입자 마자 흘러내려 민망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단 하나의 바지를 사더라도 마음에 꼭 드는 것을 골라 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행동.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여러 벌 사는 대신 마음에 드는 한 벌을 산다면 훨씬 더 만족감이 크지 않을까 싶다가도 사람의 모양이 제각기 다 다른데 싶은 생각에 이른다. 상황에 따라 그의 소비가 출렁대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음을 안다. 여전히 현재 역시 변화 중임을. 물론 나는 그의 소비를 이해할 수는 없다. 단지 그의 생각을 인정한다. 물건은 사고 싶고 돈도 아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쇼핑을 좋아하는 그로 인하여 함께 다니는 쇼핑몰에서 요즘의 유행을 곁눈질할 수 있는 점도 재미있다. 젊은이들이 가는 거리며 카페를 데리고 다니는 그 덕에 나는 좀 더 젊은 사람으로 살 수 있다. 그저 그가 그곳이 어디든 나와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고맙다.





결혼 초 서로의 얼굴만 보아도 행복하던 그 시절. 남편은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다. 버는 돈은 다 써야 하고 집은 평생 전세로 살고 싶다던 오늘만 사는 그 남자는 가진 전세금으로 대출을 받아 집 살 것을 권하는 나에게 맞추어 집을 샀다.(그 당시는 세계 금융 위기상황의 여파로 집값 하락론이 팽배하고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던 시기였다.) 벌이의 70%는 저축해야 한다는 나의 신조에 맞추어 극 절약하는 삶을 살았다. (덕분에 우리는 결혼 초 자산을 꽤 늘일 수 있었고 어느덧 이른바 투기과열지구에 아파트 3채를 가진 젊은 부부가 되었다. 물론 이후 부부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으며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오히려 퇴보했다.)





어쩌면 그 당시 그가 쇼핑을 멈출 수 있었던 이유는 옷이나 신발보다 훨씬 규모가 큰 집을 샀고 또 집을 샀으며 또 집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우리는 1채의 집을 처분하여 자산을 줄이고 소비에 치중했다. 그가 사면 나도 스트레스 해소의 의미로 쌓이고 말 물건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샀고 살림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음식을 시키거나 외식을 했다. 더 이상 가계부도 쓰지 않았다.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을 고민하지 않았고 수입과 지출을 모른 채로 그냥 살았다. 가정 경제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었다. 줄줄 새는 돈이 많아졌고 전보다 특별히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임이 아님에도 돈은 모이지 않았다.




그의 지방 생활로 서로가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된 우리 부부는 사이가 다시 좋아지자 조금씩 다시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동안 주로 사던 값비싼 브랜드의 옷 대신 저렴한 SPA 브랜드에서 그것도 꼭 세일하는 옷만을 샀다. 그도 아니면 적당한 가격대의 브랜드 아울렛에서 80% 이상의 할인 제품 사냥꾼이 되어 옷을 사러 다녔다. 나는 예전처럼 가계부를 쓰거나 가정 경제에 신경쓸 힘이 나지는 않았지만 소비를 줄였고 외식을 거두고 다시 집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 바라만 보아도 좋고 궁핍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것이라면 남루하지 않다던 우리. 행복해하며 함께 절약하던 그 신혼의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우리의 투자는 더 오래 성공적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가진 상처로 인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은 그 때와 같이 지낼 각오를 다질 수 없다. A와 B가 만나 B가 A가 되거나 A가 B가 되는 관계는 피로하다. 어쩌면 지나친 절제와 희생이 동반되는 삶이었기에 더 쉽게 분노하지 않았나 싶다. A와 B가 한 걸음씩 다가와 ab로 사는 삶. 혹은 A와 B인 채로 서로를 인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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