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시 우리

무릉도원이 될 수 있을까.

by 경주

경주야

본사 발령 났어.



다시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그.


주말부부로서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았던 우리였다. 본사에서의 지독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던 그를 알고 있기에 그 소식이 달갑지 않았다. 지방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의 이직을 권유받았던 그였기에 회사를 바꿀까도 진지하게 고민한 우리였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큰일이다.

이 짐을 어쩌냐.




무엇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의 집에 쌓인 우리집 크기만큼의 짐. 가전이나 가구는 그곳에서 정리하면 된다. 문제는 그가 사 둔 옷과 신발. 그 짐을 우리집으로 가져오면 우리는 앉아있을 곳도 없다.



내가 가서 도와줄까?
네가 오더라도

뭘 버릴지는

내가 고민해야 하는 거니까

내가 해볼게.
응.

그럼 일단 마트 가서

가장 큰 봉투 무더기로 사.

100L쯤 되는 큰 봉투.

그리고 최근에 산 옷,

아직 입지 않은 새 옷,

지금 당장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의 옷이 아니면

다 집어넣어.



버릴 물건을 묶어내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는 그.




경주야,

(숨이 넘어가도록 혼자 웃는다)

나 이제 물건 사는 게 무섭다.

물건들 지긋지긋해.





호텔이 편안한 이유와 신혼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유사하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빌리자면 상처를 되짚을 공간이 없어서이다. 아름다운 순간만이 가득하던 신혼집은 넘쳐나는 물건과 서로에게 뽀죡하던 순간들로 힘겨워졌었다. 다시 돌아오는 그를 맞으며 혼자 생각한다.



다시 이곳은 그와 나의 무릉도원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많은 물건을 버리고 왔지만 여전히 그의 물건은 많았고 그가 돌아오자 안정적이던 우리집은 다시금 둘 곳 없는 물건들이 생겨났다.




과거 그와 나, 둘만의 공간이었던 당시 그러니까 그가 무릉도원으로 우리집을 칭하던 그 시기 우리집은 내 방과 그의 방 그리고 우리가 함께 쓰는 침실로 꾸며져 있었다. 안방이 꽉 차도록 짜여진 옷장 그리고 그의 방과 거실 틈에 있는 장까지 그의 물건이 가득했지만 정돈이 잘 된 깨끗한 집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내 방은 아들의 방으로 그의 방은 딸의 방으로 변했다. 많은 물건을 버렸지만 또 아이들이 원하는 많은 물건들로 채워지게 된 방 안은 빈틈이 없었다. 그와 나의 물건은 갈 곳을 잃었다. 그 상태로 물건들 틈에서 살아갔다.



그가 떠나고 집이 정리되며 마음도 안정되어갔다. 그런데 아직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다시 그의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혼란스러운 상태로 지낼 수는 없었다.



그는 지방에서 많은 양의 짐을 줄였지만 다시 이곳에 돌아와 짐을 줄이고 또 줄였다. 이삿짐 수준의 상당한 양의 물건들을 기부했다. 사용할 수 있으나 1년을 돌아보았을 때 사용한 적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스팀다리미, 죽이나 요거트 등을 만드는 소형 가전을 포함하여 더 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으나 비싼 가격에 산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리를 마치고 보니 물건을 사느라 소비한 시간과 버리느라 사용한 시간 그리고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일한 시간이 모두 떠올랐다.



아이들의 물건들도 그 양이 상당했다. 늘 갖고 싶은 물건들이 한가득인 아이들. 아이들의 책장과 옷장 그리고 책상에 빈 공간의 영역을 지정해주었다. 용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언제든 사도 좋지만 항상 빈 공간이 있어야 함을 알려주었다. (빈 공간은 선물 등의 예상외의 물건이 생겼을 때 임시로 보관하는 장소이다.) 예전에는 물건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금욕을 강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물건을 고민해서 살 줄 아는 능력을 길러 주고 싶다. 물건보다 경험이 소중하다는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여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단, 사고 싶은 것을 살 수는 있으나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도록 물건이 넘치면 안 되는 것을 끊임없이 되새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혼 초반 내가 바라는 생활 패턴인 극도의 절약으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쉬엄쉬엄 모았다면 어땠을까. 지나친 금욕과 절제는 그와 나를 더 쉽게 지치고 화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와 함께 가정의 수입과 지출, 경제 규모를 확인하고 재무 설계를 받으며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그도 나도 그 이전처럼 극도의 절약이나 생각 없이 지출하는 삶이 아닌 균형 있는 삶을 바라고 있었다.








한밤에 그와 공원을 거닌다.



신혼 시절이
좀 더 유지되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직도
경주를 떠받들고 살고 있겠지.





더 행복했을까?






경주야.

나는 그것도
서로에게
건강한 삶은 아닌 거 같아.

나는 지금이 행복해.

너와 내가
서로에게 상처받았던 그 시간을 지나와서

서로를 더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더 조심하고

서로의 삶을 인정해주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잖아.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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