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니멀리스트가 맥시멀리스트와 사는 법

변화의 시작은 주방부터

by 경주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미하엘 코르트 -



어린 시절 나는 한 번도 내 물건이 풍족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손을 잡아주며 내가 최고라고 말해주는 아빠 그리고 어디서든 내 자랑을 늘어놓으며 언제나 나를 믿어주던 엄마, 엄마보다도 더 세심하게 나를 살피던 언니, 사려 깊게 나를 도와주던 오빠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고 믿으며 자랐다.


내가 꿈꾸던 목표를 이루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꿈꾸던 삶과 멀어졌다. 내 인생관이 흔들리면서 그동안의 나를 모두 부정하며 쇼핑을 즐기고 분에 넘치는 외식을 했다. 어린 시절 스스로가 정의롭다고 믿던 그 마음이 흔들리면서 외면에 치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 시절의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기에 내가 소유로 인하여 행복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물건보다는 경험이 내게는 소중했고 스스로가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오지를 다니는 의료인을 꿈꾸었던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사로운 삶에서 벗어나 수녀나 비구니를 택하고 싶었던 나. 처음 명품 가격을 알게 되던 어렸던 어느 날의 다짐. 내가 명품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지게 되면 저렴한 물건을 사고 나머지는 기부하여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더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쓰겠다는 각오를 다지던 어린날.


그런데 과연 더 가치 있는 일이란 것은 무엇인가.


선악이 분명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쫓고 있던 것은 선이 맞던가. 나의 믿음은 내가 본 너무나 작은 세계에 국한된 오해는 아니었겠는가. 명확한 인생관으로 자신 있던 내가, 서로 다른 두 학교에서 만난, 나와는 다른 차원의 두 세계를 만나며 모든 것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교직에 들어서기 전, 과거의 내가 본다면 물품을 늘이고 소비에 치중하는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은 온통 부정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즐겁게 사는 맥시멀리스트가 있다. 이것이 어찌 부정의 삶인가.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과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나는 많은 물건 자체에서 피로감과 죄책감을 느끼기에 미니멀리즘의 삶의 방식에서 편안함을 느낄 뿐이다. 채움보다는 비움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 원하는 것을 채워가며 행복감을 느끼는 남편. 어느 쪽도 옳지도 틀리지도 않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채우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를 인정한다. 그러나 비우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가 그와 공존해야 한다. 접점이 있는가.


패션을 사랑하는 그와 관계없으며 그가 가장 관심 없어하는 구역. 주방의 미니멀리즘을 실현하기로 한다. 여기저기서 받아와 짝이 맞지 않는 컵과 냉장고 구매 시에 얻은 밥그릇 세트로 주방은 가득하다. 나는 모든 물건에 그렇지만 그릇 역시 욕심이 없어 우리집에 있는 그릇은 선물로 들어왔거나 사은품으로 받거나 방과 후 수업에서 아이들이 만들어온 것이 전부이다. 의미 있고 소중한 것들 위주로 그러니까 아이들이 만들어온 그릇들 위주로 우리 가족의 인원수에 맞추어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한다. 주방에 빈 공간이 생기니 이제야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냉장고에는 여기저기서 받아온 식재료가 가득하다. 지난달 기준 사용한 바 없는 식재료들은 정리한다. 많은 공간이 비워진다. 칸 마다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먹거리를 넣어두며 관리한다. 소유욕이 있을수록 그것을 정리할 자신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렇게 정리하니 개인별로 냉장고를 찾아 뒤적일 일이 없고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식재료가 무엇인지 구별이 쉽다. 밤이면 항상 마른오징어의 위치를 묻는 남편이 냉동실 맨 위의 그의 이름이 붙여진 칸에 얌전히 놓인 오징어를 보더니 환호한다.


비워진 공간이 자아내는 평온함. 그는 뜻밖에도 이러한 삶을 꿈꿔왔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의 비우기는 주방에서 시작하였으나 다른 영역으로 더 확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에버랜드로 향한 날, 그는 에버랜드 내의 SPA 매장(직접 만들고 유통하여 중간 과정을 없애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곳)에 들어간다. 옛날의 어느 날처럼 그는 내게 옷을 골라준다. 그가 골라준 옷은 꽤 편하고 예쁘다. 훨씬 어려 보이고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돈을 아끼지 말고 사라고 매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한다. 그 순간 나만 부끄럽다. 그래도 예쁜 옷을 사주고 공주님처럼 예쁘다고 소리치던 과거의 그와 겹쳐지는 모습에 미소 짓게 된다. 그는 나에게 이제 그만 예전 옷들은 버리고 스타일을 바꿔보자고 한다. 그가 권한 바지에 재킷을 입으니 그의 말처럼 한결 젊어 보이고 기분이 좋다.


유행은 한낱 자본주의의 과생산을 해소하기 위한 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던 나인데(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채사장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영향이 크다. 그 책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상의 과생산은 필연적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제국주의, 전쟁, 유행이다. 누가 보아도 이 중 가장 평화적인 방법은 유행인 거다.) 막상 유행에 맞게 나오는 하이웨스트 바지를 입어보니 허리를 더욱 잘록하게 보이게 하고 오버사이즈 재킷은 편안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과하지 않은 내가 생각하는 적정 수준에 해당하는 소비는 꽤 그럴듯한 기분을 내게 선물한다.


그의 소비는 조금씩 진화해오고 있으며 그의 권유로 나는 좀 더 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와 나는 한 걸음 만큼 가까워졌다. 내가 주의하고 있는 점은 너무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끼워맞추려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가 본다. 각각의 공간을 허락한 지금이 행복하다.


참 신기하게도 난 이제 그의 방식을 온전히 인정한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 했던가. 그의 모든 것에 대해 아직 이해라기보다는 인정에 가까우나 소비는 소비대로, 기부는 기부대로 가치가 있음을 안다. 언젠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그 날까지,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는 각자 자신의 행복을 위한다는 공통의 목적성을 가지고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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