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났다.
집은 수많은 물건으로 넘쳐나서
그의 공백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물건들.
물건이 쌓이고 쌓여
갈 곳 없던
그 모습만으로
충분한 피로감을 자아내던
우리의 집.
그가 떠나자 이상하게도 힘이 솟았다. 나는 정리가 하고 싶어졌다. 정체 모를 물건이 가득 쌓여 식사를 하려면 물건을 걷어내고 모퉁이에서 간신히 밥을 먹어야 했던 식탁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식탁 위에 먼지 한 톨까지 걷어내고 나자 마음속에서 기분 좋은 변화가 일어난다. 더욱 힘이 솟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식탁만큼은 깨끗하게 정리하자고 마음먹는다. 식탁이 깨끗해지니 다른 곳들도 하나하나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가 떠난 후 그가 사라진 집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가 떠난 곳은 그가 가고 싶다던 남극이나 오리건주가 아닌 전라도. 우리가 결정하지 못한 문제를 회사에서 정리해주었다. 집에서 힘들었던 그는 상사와도 극심한 대립 상태였다. 본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갑작스럽게 지방 발령을 받았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다시 시작한 그. 혹시 내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지방으로 내려간 그는 밝아졌다.
그는 주말이면 우리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는 손님 집에 방문하듯 과일이나 고구마 따위를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어떤 날은 아들 방에 걸어줄 시계를 가져와 걸어주고 어떤 날은 집안의 등을 바꾸어준다. 남편이 없다고 여겼던 나는, 그가, 전등을 갈아주고 집에 못을 박아주는 사소한 행동을 할 때면 그 하나하나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그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주말에 머물다 가는 그에게 나는 조심스러웠고 어떤 불만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그는 이미 남이어서.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멀어서.
그런데 내가 그를 남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가 달라졌다. 그런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는 더 많이 다가왔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에게 초대받아간 그의 집. 그가 혼자 사는 집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았던 집의 크기와 같았다. 하나는 옷방, 하나는 잠자는 방, 하나는 컴퓨터 하는 방. 우리의 집에서 살 때 그의 곁에는 항상 쓰레기로 가득했는데 그는 혼자이기에 충분한 그만의 공간 모두를 깨끗하게 정리하며 살고 있었다. 그만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좋아하던 옷도 신발도 잊고
나를 좋아하던 그.
나는
그와 멀어졌다.
그를 버리고
아이들과 살아갈 생각을 했다.
그를 지웠더니
그가 다시 다가온다.
혼자라 생각했던 나는
그의 작은 행동에도 고마웠다.
우리의 관계는 재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