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사 메니에르는 13세 소녀가 갑작스럽게 청력을 잃고 어지러워하다가 사망한 후 전정기관에서 붉은 물질을 확인한다. 이로인해 어지러움이 머리가 아닌 귀의 문제일 수도 있음이 최초로 알려지게 된다. 그것이 1861년이다.
김정호가 27년간의 노력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내던 해, 대한제국 이전 마지막 임금 철종 12년이었던 해, 우리의 조선을 힘겹게 이끌어 가던 그 해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부검을 통해 메니에르라는 병을 알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 의사에 의해 메니에르라는 질병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메니에르를 진단할 때는 20분 이상 지속되는 회전하는 듯한 어지러움(회전하는 어지러움이 아닌 경우 다른 질병임), 실제로는 아무 소리가 없었으나 혼자만 듣는 의미 없는 소리인 이명(뜻이 있는 의미있는 소리가 들릴 경우는 환청임), 저주파 소리가 잘 안들리는 것에서 시작되는 난청(보통 한 쪽 귀에서만 시작됨), 물에 빠진 듯한 이충만감(귀에 물이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듦)의 증상 여부를 확인한다.
메니에르는 피검사나 MRI와 같은 검사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어지러움 유발 검사, 안진 검사, 귀압 검사 등과 환자의 증상에 따른 의사의 문진을 통해 진단된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서 메니에르가 의심되는 환자의 경우 상태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긴 시간 지속되는 회전성 어지럼증, 이충만감, 이명 그리고 청력 검사 결과 저주파의 난청이 심한 정도로 있고 전정기관이 제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상태, 이 모든 지표가 하나의 질병을 향한다며 대학 병원의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나의 현 상태를 메니에르라고 정리해주신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으나 병명을 들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 동안 몸의 변화가 참 힘들었는데 명확한 느낌이 든다.
진단되었다는 것은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휘청대는 어지럼을 처음 느낀 것은 2017년이다. 그때 어지럽다고 동네 내과에서 빈혈 검사만 받은 어리석음이 병을 키웠나보다. 증상이야 원래 내 몸에 있었던 것, 그러나 도대체 왜 내 몸에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인지가 궁금하다. 위염, 간염, 디스크, 폐렴 등 그저 들으면 어떤 병이구나 싶은 병이야 그렇지 않지만 희귀한 증상들의 합이 메니에르라니 대체 왜 걸리는 걸까?
메니에르는 귀의 가장 안쪽 부분인 내이에 있는 평형 기관(몸이 얼마나 기울어졌는지를 감지함)과 청각기관(듣기를 담당함)에 물이 차는 질병이라고 한다. 내림프 관 안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내림프액이 생기는 내이 내림프 수종은 귀의 안쪽에 물이 정도에 넘게 차게 하여 귀먹음, 귀울림 그리고 어지럼을 유발하는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귀에 물이 차는 증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질병명을 알아 해결이 될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직 미지의 병이었다니.
메니에르는 질병명을 알아도 치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내림프 수종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자가 면역 질환이 주목 받고 있다. 과로, 스트레스, 체내 나트륨 과다 축적, 전신 대사 장애, 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보던 드라마에서 여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생활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캔디가 왜 그리 멋져보였을까? 대학 재학 시절 평일은 과사무실에서 일했고 주말이면 과외를 하며 꼭 한번에 임용에 붙겠다며 열심히 공부하던 나는 그렇게 항상 바쁜 내가 자랑스러웠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1분 1초도 쉬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전혀 없는 나에게 반할 지경이었다. 일하며 대학원에 다니고 집안을 닦고 쓸며 아이들을 키우고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내가 나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과로는 내가 생각하는 멋짐에 필수 조건인 셈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학습지를 만들게 되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요리하다가 손에 힘이 빠져 국수가닥을 놓쳐 버리기도 하고 계단을 오르다 휘청 거리기도 했다. 빨래를 널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구니를 놓치고 젓가락질을 하다 젓가락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손에 쥐가 나기도 했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너무 힘겨웠다.
메니에르 환자는 정상 생활이 가능한 사람부터 약을 먹어도 어지럼증이 너무 심하여 어떤 생활도 어려운 사람까지 무척 다양하다. 배우 한지민은 메니에르로 인해 배우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가수 배일호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기도 했고 증상으로 메스껍고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점이 힘들었다고 했다. 배우 박원숙은 운전을 하거나 걷는 일 조차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메니에르에 대해 계속 검색해본다. 좋은 세상이다. 정보와 지식을 독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 새삼 감사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머리가 아프다. 가끔 시야가 흐려지기도 한다. 온몸이 근육통처럼 아프다. 속이 계속 울렁거린다. 밥은 먹고 싶지 않다. 머리는 안개 속에 쌓인 듯 희미하다. 지속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두려워진다. 기운이 없고 어지러우며 춥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다른 과에 협진을 요청하신다. 검사에 검사를 한다. 우각차단에 의한 부정맥, 공복 혈당장애, 상세불명의 류머티즘, 관찰이 필요한 고혈압(고혈압 진단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함)이 차례로 진단된다. 예전에도 입원전 받았던 심전도 검사, 늘 정상이었는데 부정맥이라니. 늘 저혈압을 걱정하던 내가 고혈압이라니. 심장초음파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몸도 열심히 일하느라 그런 거예요.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정상일 때보다 평소보다 더 과격하게 더 열심히 일하다보니 각종 수치들이 정상이 아닌 거죠.
세포들도 결국 나의 마음을 닮은건가. 굳이 뭘 또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거니?
몸이 아프다. 두려운 것은 난청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니에르 증상인 난청과 이명의 경우 초기에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며 의사 선생님은 메치론정(내분비장애개선), 다이크로짇정(이뇨제), 타나민정(순환개선제), 메네스에스정(어지럼,이명,청력소실 개선), 보나링에이정(구토, 어지러움 개선) 등 다량의 약을 처방하신다.
짠음식을 먹지 않고 카페인과 술을 멀리하며 과로를 피하는 생활 습관 개선이 약복용과 함께 이루어져야할 치료 방법이다.
빠른 시일 내에 청력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영구 소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왼쪽에서 시작된 난청은 오른쪽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소실된 청각은 되돌리기 어렵다. 청각 장애를 가진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 청력은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른다. 불안증이 덧붙여진다. 머릿 속은 점점 희미해져 업무 속도가 더뎌지고 쉬어야한다지만 오히려 잠을 줄이게 된다. 이렇게 삶이 끝나나 싶을 정도의 컨디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