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들어서면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곳,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없는 곳, 나는 오늘 그곳에 간다.
슬픔과 외로움, 절망 따위에게 내 곁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작정할 수 있는 곳, 나는 놀이동산이 참 좋았다. 그래서 나를 찌를 듯 들리는 큰 소리의 음악을 들으며 신나는 율동으로 언제나 행복한 춤을 추는 퍼레이드걸이 되고 싶었다.
한껏 들뜬 사람들 곁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 여기저기 울려퍼지는 신나는 음악 소리로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곳, 이 곳의 문턱을 넘어서면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아 내게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어 나와 취향이 같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던 그 남자는 나와 함께 열두 번도 더 에버랜드에 갔다. 가벼운 두 손에 작정하기로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잊곤 했다.
오늘 저녁은 잠시 에버랜드에 다녀오는 건 어때?
그 남자가 묻는다. 그렇다. 그 남자와 나의 아이들 역시 놀이동산을 좋아한다. 놀이동산처럼 거창한 곳은 차치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집앞 나들이 조차 한참이 되었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어지럼증이 심해져 나는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만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에나 잠시 일어나 살기 위해, 살아보자고, 김치와 밥을 욱여넣었다. 음식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런 지경이니 당연히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의 기호에 맞추어 밥은 해 줄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은 냉동식품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해 먹었고 배고픔 따위를 못 느끼는 딸은 김을 꺼내어 죽지 않을 만큼만 밥을 먹었다. 4월이 지나 5월이 되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이들은 더욱 말라갔다.
어린이날이 되어도 아이들과 외출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주었고 고맙게도 아들과 딸은 행복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엄마, 나 사실은 요즘 계속 악몽을 꿔.
잠자리에 누우니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콱 막혀버린 것 같다. 그 동안 남편은 여러 차례 외출을 제안했지만 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설 자신이 없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은 모두 학교에서 써 버렸고 집에서는 쉬고 또 쉬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내 몸 하나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벽 잡고 걷는 일은 일상이 되었는데 어찌 내 아이와 외출할 수 있겠는가.
어지러워 어쩔 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딸과 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적어도 어지러워 주저 앉거나 쓰러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누워만 있는 엄마를 보는 것 역시 아이에게는 악몽이었던 거다.
내 아이에게 좀더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주어야한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여행을 좋아한다. 우리는 자주 아무 계획도 없이 강원도로, 남해로 떠나곤 했다. 우리 모두는 떠나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갑자기 매주 집에만 있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결혼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던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내가 떠나자라고 하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함께 떠나자.
직장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것을 접고 다른 세계로 떠나자는 말이었다. 그만큼 남편과 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즐긴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과 함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남편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이 남자와 함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불완전하고 두려운 공간에서 내가 어떤 상황이라도 그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예측 불가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저 사람은 내가 곤란하다고 믿는 그 상황을 때때로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그 모습을 타박하고 그런 때면 저 사람의 가족인 것에 한없이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와 힘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구속받지 않는 그 모습에서 나는 안정감 또한 느낀다. 나의 어떤 모습도 있는 그대로 부풀리지 않고 받아들여줄 사람, 일이 생기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 줄 사람. 그래 그 사람이 있으니 오늘은 놀이동산에 가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동산에 다녀오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아져 알 수 없는 힘이 솟을지도 모른다.
에버랜드에 도착한다. 해가 지려고 한다.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날에 걷는 것은 더욱 기운을 잃게하여 싫다. 다행히 뜨거운 태양은 이미 기운을 잃고 마지막을 준비한다. 걷기에 적당하군. 조금 더 걷다보니 해가 진다. 이 곳은 비현실적인 불빛과 색감으로 물든다. 역시 이 곳은 내가 사랑하는 곳이지 싶다. 그런데 걷는데 걷는 느낌이 아니다.
어지럽다. 어지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발걸음을 내딛는 나는 저기에 있고 내 몸만이 의식없이 움직인다고 느껴진다.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 불안한 느낌이 강해진다. 남편은 앞장서서 딸과 함께 걷고 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남편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런데 내가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더 이상해진다. 걷고 있지만 내가 걷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꿈 속을 걷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물속으로 빠져드는 기분. 몸이 비틀거린다. 아이가 나를 잡는다. 아이가 없었다면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교탁을 붙들고 간신히 쓰러짐을 면하였던 3월의 어느 날과 겹쳐지는 시간. 앉아 숨을 고른다. 경쾌한 음악과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 몸이 현실에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 뭐라 형용할 수 없어 눈물이 흐른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걸까? 모두가 행복한 이곳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들이 나를 바라보고는 작은 손가락을 들어 내 눈물을 닦는다. 모두가 환호하는 이곳에서 우리 네 가족만이 소리 없이 걷는다.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걷는다. 행복한 웃음 소리, 가벼운 음악 소리 속에서 우리 가족만이 다른 길을 걷는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멈춰선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이에게 기대어 걸었던 그 시간은 너무나 씁쓸했다. 나의 아이는 내 눈물을 닦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 순간 놀이동산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열세살, 처음 놀이동산에 들어서던 놀람과 환희. 열다섯살 이 곳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던 순간. 친구들과 왁자지껄 놀이동산을 누비던 시간.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들어서던 이 곳. 그리고 남자 친구와 행복하던 시간. 아이들의 웃음을 바라보던 남편과 나. 돌이켜보니 모두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들이었다.
기력없는 눈물은 기이하다. 어떤 소리도 없이 고장난 마개 틈으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처럼 그저 마냥 흐른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닦는다. 그 모습이 내 눈에 비친다. 눈물을 흘리고 앉아있기에 이 곳은 너무 아름답다. 행복한 이야기와 음악으로 너무나 소란스럽다.
내가 사랑하던 이 곳, 상처가 잘 지워지지 않는 못난 성격의 나는 이제 이 곳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니 언제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메니에르는 대체 언제쯤 나를 놓아줄까.
나는 다시 이 곳에서 웃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이 곳을 잃어버린 걸까.
바뤼흐 스피노자가 말했듯 두려움은 희망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희망없는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고 두려움 없는 희망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두려움과 희망의 공존 속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