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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리, 그 위대함

메니에르로 인한 이명과 청각과민증

by 경주

드라마 '또 오해영'의 남주 박도경은 음향감독이다. 서해와 동해의 파도 소리가 다름을 알고 밤과 낮의 소리를 구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리를 모으는 박도경의 직업은 참 멋져 보인다. 그건 아마도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즐길 줄 아는, 좋아할 줄 아는 나여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다. 유치원에 다닐 때 '개구리 왕자'라는 뮤지컬을 보고 감동하여 아동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기도 했다. 소극장에 울려 퍼지는 배우의 맑은 음성, 얼굴 표정이 한눈에 보이는 무대, 오로지 배우만을 비추던 무대 조명에 흥분했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놀이동산의 설렘이 좋아 공연팀으로 일하고 싶었다.


늦은 밤 듣는 라디오는 일대다의 소통구조를 가진 대중매체임을 잊게 했다.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DJ의 한 마디 한 마디에도 귀 기울이곤 했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와 선별된 음악이 조화로운 라디오에 흠뻑 빠져 있었다. 나 역시 좋은 노래로, 알지 못하는 타인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라디오 DJ가 되기를 꿈꿨다.


롯데월드의 퍼레이드걸을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지만 공연 참여 신청에 성공하여 공연팀과 함께 2차례에 걸친 퍼레이드를 해보았다. 뮤지컬 배우가 되지 못했지만 그리스, 모차르트, 42번가,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많은 뮤지컬을 즐겼다. 지역 방송국 DJ를 지원하여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엄마가 아파 간병으로 라디오 진행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더 이상은 라디오 부스에 앉아 음질 좋은 음악을 큰 소리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역 방송국의 특성상 자신의 프로그램은 대본 작성, 진행, 음향 조절 등을 혼자 하는 1인 방송 체제였기에 라디오 부스 안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가능했다. 12층 라디오 부스에 혼자 앉아 음악을 선곡하여 듣고 음질 좋은 마이크로 전해지는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행복이었다.


그랬던 내가, 소리가 두려워졌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노래방에 가는 것은 나의 기쁨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이 분명했다. 아들과 딸은 노래방을 좋아했다.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면 몇 시간은 거뜬히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특히 나를 닮은 아들은 노래방에서 매우 큰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행복을 손에 움켜쥔 것 같았다. 노래방을 한동안 못 가게 될 때면 남편은 차를 타고 내게 노래방 마이크를 쥐어주며 노래를 부르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건희 회장이 와도 안 바꿀 나의 아빠는 보청기를 착용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어렵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이렇다. 집에 돌아올 때면 내 두 손을 모아 잡는다. 그리곤 손이 어쩜 이리 예쁠까? 집에 오는 내내 모든 사람을 보아도 우리 딸보다 예쁜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며 크게 웃는다. 내 손은 너무 통통하고 얼굴은 너무나 평범한데.


지금껏 내게 나쁜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아빠, 내 앞에서 그 누구의 흉도 평생 본 적이 없는 아빠, 그런 아빠는 예전부터 귀가 잘 안 들리셨지만 장애 등급을 받으면 취업에 어려움이 생길까 봐 병원을 두려워하셨다. 그렇게 조금씩 귀가 어두워지셨고 여든을 넘긴 지금은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하신다. 그래서 아빠와 대화하려면 난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아빠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난 즐거웠다. 언제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허허허 마음 느긋해지는 그 웃음을 들려줄 아빠니까.


그랬던 내가, 아빠의 큰 목소리를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빠의 웃음소리에도 마음이 너그러워지지 않았다. 나를 걱정하는 아빠의 큰 목소리는 나의 몸에 울려 퍼지며 참을 수 없는 피로감을 주었다.





소리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서 다른 이명이 들린다. 한쪽에서는 낮게 울리는 소리, 다른 쪽에서는 비교적 높은 소리가 교차되어 들린다. 두통으로 진통제를 달고 산다. 대학 병원에서는 신경과를 권한다. 신경과에 가면 또다시 검사가 이어질 터 잠시 미뤄두고 싶다. 이제는 그만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이명에 시달리던 나는 좋아하던 그 어떤 음악도, 내 아이가 내지르는 기쁨의 소리도, 심지어 아빠의 큰 목소리도 내 몸에 박히듯 힘들게 느껴지기만 했다.


청각과민증이라고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과도한 이명에 귀가 피로해져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과도한 소음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귀마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시어 병원을 오가는 길에 사용해본다. 귀를 틀어막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들어 모자를 푹 눌러쓴다.


좋아하던 음악 소리를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아 진 것쯤은 괜찮다. 그런데 사람들의 소리조차 듣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참을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도 나를 지치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이명은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고요, 적막이 좋다.

내 목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진다. 나는 말할 때 자꾸 더 작은 목소리를 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더 작아져서 마침내는 아무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아 졌다.


이렇게 내가 소리를 잃게 될 것이 두렵다. 소리의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 두렵다. 나는 무기력하고 자꾸만 숨고 싶다.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 나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던 내가 이렇게 자꾸만 숨고 싶어 진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괴롭다.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리조차 괴롭게 듣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거리를 두고 싶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 병,

어쩌면 평생을 나와 함께해야 한다는 이 병.

두려움이란 그것이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메니에르, 조급한 나에게는 두려움과 우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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