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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19. 2024

7,000원을 주고 이 나간 화소반 그릇을 사보았다

수리일기1

120분

3000원     


택배배송을 요구했지만 판매자는 육아하느라 택배 포장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 문고리 거래를 요청했지만, 해 본 적 없다며 문고리 거래도 거절당했다. 

이 나간 화소반 그릇들, 택배도 안돼, 문고리 거래도 안돼, 석 달 넘게 판매되지도 않으면 구제해 주는 걸로 알아야지 콧대도 높네... 하고 생각 했. 지. 만.     

알겠다.      


국그릇, 밥그릇, 스푼 받침 다해서 여섯 점인데 선득하니 가볍다. 내내 궁금해하다 꾹 참고 드디어 만져보니 그릇마다 감촉이 다르다. 빚은 듯한 선의 전등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의 국그릇. 볼록하지만 맘이 푸근해지는 곡선을 가진 밥그릇. 

 광택은 없지만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낸다. 



바사삭 깨진 물건들은 없다. 아주 조금씩 칩이 나가 있다. 고운 그릇들 이가 나가 사용하기 찝찝해 버리지도 못하고, 헐값에 내놓기는 나라도 아까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당 7000원 가량,

버스비 3000원 내고 120분 걸려 갈 만한 거래였다.           


잘 변하는 것들을 신뢰하지 못했다. 벗겨지는 가죽이라든지, 색이 바래는 장신구라든지. 우주의 티끌인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쉽게 변하는 것들은 믿지 못하는 것을 넘어 싫어했다.      

얼기설기 배운 킨츠기를 시연도 해볼 겸, 어슬렁거리는 내게 중고거래 카페의 화소반 그릇 거래글이 포착되었다.


조금씩 이가 나가 슬픈 화소반 그릇과 기구 도합 여섯 점을, 밀가루와 생 옻, 목 분을 넣어 메워주었다. 초보 수리자는 자기가 하면서도 자신의 손이 이물스럽다. 생각과 다르게 옻은 여기저기 묻고 반죽은 둔탁하다. 비율이 제대로 맞을 것인지 반신반의. 나의 어떤 점이 미욱한지 이번 작업에서 대번에 보인다. 


   


토깽이 수저받침은 살짝 들린 다리가 포인트!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냐고?     


가볍고 거칠면서 매끄러운 화소반은 이가 잘 나간다고 한다. 이 그릇들을 메워가며, 고쳐가며 쓸 것이다. 은색 도기에는 은분을 칠해주고, 검은색 도기에는 금분을 칠해 줄 것이다. 바사삭 깨져도, 옻 풀로 붙여주고, 토회칠을 한 뒤 다시 금은 분을 올려 삶이 끝날 때까지(?) 쓸 것이다. 

일단 킨츠기를 하고 나면, 전자레인지에도 식기세척기에도 넣는 것은 삼가야 한다. 조금의 수고로움과 (내 삶에서의) 영원을 맞바꾸는 것이겠지?     


더 이상의 그릇 소비를 줄임으로,

지구에게 고마울 일 좀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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