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모블리 <Fin De L’affaire>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EdLSMnQFs-A
‘Hank Mobley with Farmer, Silver, Watkins, Blakey‘ 앨범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r8eeRZnASg
소개하는 곡, 테너 색서포니스트 행크 모블리Hank Mobley의 <Fin de L’affaire>는 독특하게 프랑스어 제목을 곡명으로 달고 있다. 곡명에 나오는 Fin이란 단어를 아는 이들은 아마도 프랑스어를 공부한 적이 있거나 옛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프랑스 영화가 끝날 때, 특히 옛 고전 프랑스 영화들이 끝날 때는 엔드 크레딧이 나타나기 직전에 필히 저 단어 Fin이 등장했었다. ‘끝’이란 뜻이다. <Fin de L’affaire>는 연애의 끝으로 번역될 수 있다.
재즈에는 콘트라팩트Contrafact라는 작곡법이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곡의 화성악적 구조 바탕 위에서 새로운 선율의 곡을 창작해 내는 기법이다. 좀 나쁘게 바라보자면, 식음료 업계에서 먼저 히트한 타사의 과자나 음료를 모방해서 유사품을 출시하는 관행과 비슷한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콘트라팩트를 통해 원곡 못지 않게, 혹은 드물지만 원곡을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트럼펫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쓴 <Tune Up>의 화성 구조 위에서 창조된 색서포니스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Countdown>이란 곡이 그렇고, <Love Me or Leave Me>라는 스탠다드 곡의 바탕 위에서 새로 쓰인 죠지 시어링George Shearing의 <Lullaby of Birdland>라는 곡이 그렇다.
화성악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전문 연주인이 아닌 이상, 같은 화성 구조 위에서 창작됐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기 전에는 이들이 유사품이라는 것을 눈치 채기 힘들 만큼 이 두 곡은 각각의 원곡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 개성 있고 고유의 정체성도 가졌다.
소개하는 행크 모블리의 <Fin de L’affaire>은 <You Don’t Know What Love is>라는 곡의 화성악적 바탕 위에서 창작됐다. 이 곡은 <Tune Up>이나 <Lullaby of Birdland>만큼 재즈사에 길이 남을 만한 훌륭한 곡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악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이 없어도 원곡을 잘 알고 있고, 원곡과 함께 오래 듣다 보면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정로도 선율이 닮아 있다.
특히 행크 모블리는 바로 앞장에서 소개한 곡 <Moritat>이 수록된 앨범 ‘Saxophone Colossus’에서 소니 롤린스가 <You Don’t Know What Love is>를 해석한 방식을 적지 않은 부분 그대로 차용해서 <Fin de L’affaire>를 작곡했고 연주했다.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의 앨범과 행크 모블리의 앨범 둘 다 1957년에 발매되기는 했지만, 소니 롤린스의 앨범이 행크 모블리의 앨범보다 6개월 정도 먼저 녹음됐고 발매도 6개월 가량 앞선다. 또, 소니 롤린스의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큰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행크 모블리가 소니 롤린스의 해석을 차용한 것이 맞다.
게다가 이 두 곡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이도 동일 인물이다. 덕 왓킨스Doug Watkins의 베이스 연주가 들려주는 웅장하면서도 고독한 느낌이 두 곡 모두에서 엇비슷하게 펼쳐진다.
때문에 독창성에 있어서는 <Fin De L’affaire>에 후한 평가를 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연주하고 자신들의 앨범에도 싣고 하며 스탠다드가 된 <Tune Up>이나 <Lullaby of Birdland>와 달리, <Fin De L’affaire>는 그 정도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의 한 장을 할애해서 소개할 만큼 행크 모블리의 <Fin de L’affaire>는 나름의 진한 매력을 품고 있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물론 이 매력과 묘한 분위기는, 콘트라팩트이기는 하지만 행크 모블리가 빚어낸 슬픔 어린 진정성 있는 선율 그리고 독한 꼬냑 한 잔을 연상시키는 농도 짙은 그의 연주 덕분이겠으나, 제목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붙인 것에서도 기인한다.
제목 때문인지, 선율 자체에서도 왠지 모를 이국적인 풍미가 느껴진다. 그 이국미가 곡의 부족한 독창성을 일정 부분 메워준다.
여기서 잠깐, 소니 롤린스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도 비교해서 함께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tLFlJIqiMLc
<Fin de L’affaire>의 원전인 <You Don’t Know What Love is>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몰아닥치는 깊은 그리움과 상실감에 대한 곡이다. 곡의 가사도 바로 그 고통이 사랑의 실체이며 핵심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이다.
You don't know what love is, til you've learned the meaning of the blues
……Do you know …….how lips that taste of tears lose their taste for kissing?
……Until you've faced each dawn with sleepless eyes, you don't know what love is
블루스의 의미를 배우기 전에는, 입맞춤의 맛을 잃고 눈물의 맛을 얻기 전에는,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아보기 전에는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가사는 반복해서 말한다. 마치 사랑의 완성은 오직 사랑의 깨어짐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듯이.
그런데 소닌 롤린스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 해석본과 행크 모블리의 <Fin de L’affaire>를 나란히 놓고 함께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연애의 끝은 이별하는 순간이 아니라, 이별 후 닥쳐오는 상실감과 절망감을 체험하는 순간이라고. 그리고 그 끝은 미국 할리웃 영화처럼 뚜렷한 완결된 결말을 가진 End가 아니라 옛날 프랑스 흑백 영화처럼 모호하고 열린 결말을 가진 Fin이라고. 우스갯소리이지만, 전남자친구의 뜬금 없는 "자니?" 문자 같은 게 이에 대한 방증의 한 조각일 거라고.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연애를 해도 그 사랑은 완전히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앞서 연애들의 열린 결말에 이어지는, 기존의 연애와 엇비슷한 바탕 위에서 콘트라팩트Contrafact를 하는 거라고.
결국 사랑의 완성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거라고.
사람들이 첫사랑에 특별한 의미를 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수도 있다. 첫사랑은 이후 하게 되는 연애들의 원전이라서.
그런데 재즈에서는 무엇이 원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재즈사에 남은 많은 명곡들 증에는 오리지널 곡보다 스탠다드를 재해석한 곡들이 훨씬 더 많고, 많은 재즈 명반들은 오리지널 곡이 아니라 바로 그 재해석된 스탠다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위에서 언급한 재즈 작곡 기법 콘트라팩트도 이러한 재해석과 재창조의 또 다른 한 유형이다.
그래서 연주되었던 모든 곡들, 지금 연주되는 모든 곡들은 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나며 맥이 이어진다. 재즈도 사랑도 End가 아닌 Fin으로 끝나는 것이다. 완성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때문에 ‘첫’이라는 접두사에 특별한 의미 같은 것이 깃들어 있을 리 없다. 첫사랑은 환상일 뿐이다.
'첫'뿐만 아니라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재즈와 사랑에서는 힘이 없다. 완성이 없으므로 모두 다 그저 과정의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삶도 그렇다.
지금 당신이 연주하고 있는 재즈, 듣고 있는 재즈,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인생, 그것들에 깃든 묘미를 맛볼 수 있다면 그만이다.
소개하는 곡 <Fin de L’affaire>는 행크 모블리의 1957년도 앨범 ‘Hank Mobley with Farmer, Silver, Watkins, Blakey‘에 수록돼 있다. 이 앨범에서 행크 모블리와 함께 한 다른 연주자 4인 중에는 꼭 주목해야 할 이름 둘이 있다.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와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다. 이 두 사람은 재즈의 하드 밥Hard Bop 장르에 있어 거장 중의 거장이다. 재즈 역사에 행크 모블리보다 훨씬 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재즈 메신저The Jazz Messengers라는 전설의 하드밥 밴드가 이 두 사람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드 밥 장르와 재즈 메신저에 대해서는 추후 15장과 16장에서 각각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고, 다만 이번 장에서는 곡을 들을 때 주인공 행크 모블리의 색서폰 소리 뿐 아니라, 호레이스 실버와 아트 블레이키가 연주하는 피아노와 드럼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부록9)
행크 모블리의 1965년 앨범 ‘dippin’에 수록된 곡 <Recado Bossa Nova>를 들어보자. 삼바의 한 부류인 보사노바Bossnova를 강렬한 하드밥 스타일로 해석한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IY3CwAUvA
부록10)
스탄 겟츠Stan Getz가 삼바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와 함께 한 보사노바 곡 <Desafinado>를 옛날 라이브 흑백 영상으로 감상해 보자. 서로 다른 곡이기는 하지만 바로 위 부록9의 <Recardo Bossa Nova>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스탄 겟츠의 쿨 재즈 스타일로 해석된 삼바와 행크 모블리의 하드 밥 스타일로 해석된 삼바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맛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91uASejkY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