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하는 곡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Boplicity>와 이 곡이 수록된 앨범 ‘Birth of the Cool’을 듣고 있자면, 태평양 해안의 선선하고 청명한 바닷바람과 상쾌한 바닷내음이 살결과 콧속을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모두 L.A.나 샌 프란시스코가 아닌 미 동부 뉴욕에서 1949년과 1950년 두 해에 걸쳐 녹음되었다.
수록곡들 중 일부 몇 곡은 녹음 직후에 작은 도넛판 EP싱글로 먼저 발매되었고, 전체 앨범이 나오게 된 것은 녹음한 지 수년이 지난 1954년에 이르러서였다. 앨범의 성공 여부에 대한 레코드 사의 경영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1949년과 1950년 녹음 당시만 해도 마일즈 데이비스는 아직 애송이 신인이었으니까.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또, 앨범이 처음 발매된 1954년에는 ‘Classics in Jazz; Miles Davis’라는 전혀 다른 제목이 달려 있었고, 8곡만 수록돼 있었다. 3곡을 더 추가해 총 11곡을 담고 ‘Birth of the Cool’이란 불후의 제목으로 바꿔서 앨범을 재발매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난 1957년이다.
앨범 제목을 ‘Birth of the Cool’로 붙임으로써 이 앨범의 녹음이 쿨 재즈Cool Jazz의 시작이었다고 공언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케팅 상의 과장이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이 앨범을 녹음한 1949년 이전에도 쿨 재즈 계통의 재즈는 분명히 존재했다. 쿨 재즈의 정교하게 정제된 세련되고 차분한 스타일이 이미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해서 크게 유행하고 있었고, 50년대 초반부터 이런 유형의 재즈를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라고 불렀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에 쿨 재즈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은, 1954년에 여러 뮤지션들의 세련되고 섬세한 풍의 재즈 곡들을 골라 담은 편집 앨범 ‘Classics in Jazz; Cool and Quiet’가 발매되고 이 앨범 제목으로부터 사람들이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쿨 재즈라고 부르면서부터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1949년 녹음들 중 한 곡도 바로 이 편집 음반에 실렸다. (이후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쿨 재즈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부드럽고 정제된 스타일의 재즈가 널리 확산되면서 미 서부라는 지역성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Classics in Jazz; Cool and Quiet’ 앨범은 여러 뮤지션들의 편집 음반으로서, 나중에 ‘Birth of The Cool’로 제목이 바뀌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 ‘Classics in Jazz; Miles Davis’와는 엄연히 다른 별개의 앨범이라는 점이다. 제목이 비슷한 것은 두 앨범 다 같은 해인 1954년에 같은 레코드 회사인 캐피탈Capitol에서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1949에 녹음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 수록곡들 이전에도 동일한 계통의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이미 고유하게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마일즈 데이비스의 녹음이 쿨 재즈의 장르적 기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쿨 재즈라는 단어의 기원에 있어서는 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곡 하나가 실린 편집 앨범 ‘Classics in Jazz; Cool and Quiet’이 쿨 재즈라는 단어의 기원이니까.
물론, 1949년 녹음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들이 1954년에 ‘Classics in Jazz; Miles Davis’ 앨범으로 나오기 전, 그 중 몇 곡이 먼저 EP 싱글로 발매되면서 그 특유의 스타일이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장르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것과 장르를 창시한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한 가지 더 반드시 짚어야 하는 것은 이 업적 역시 마일즈 데이비스 혼자서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1949년의 녹음 곡 들은 마일즈 데이비스 혼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방향을 잡고 완성한 작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1949년 녹음 곡들 특유의 스타일을 웨스트 코스트 재즈에 적극적으로 이식해 장르의 발전을 이끌어낸 인물도 마일즈 데이비스가 아니었다.
4장에서 쳇 베이커Chet Baker가 누구에게서 마약을 배웠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쿨 재즈와 바리톤 색서포니스트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을 잠깐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Birth of The Cool’ 앨범의 수록곡들을 1949년에 마일즈 데이비스가 녹음할 당시 그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마일즈 데이비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리 멀리건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길 에반스Gil Evans다.
제리 멀리건과 길 에반스는 ‘Birth of The Cool’ 앨범의 수록곡들 대부분을 편곡하고 기본 틀을 잡았다.
이 두 사람과 마일즈 데이비스 사이의 분쟁 끝에 어찌어찌 하여 마일즈 데이비스 단독 이름으로 싱글 EP가 나오고 전체 앨범도 그의 단독 이름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Birth of The Cool'은 엄연히 마일즈 데이비스와 제리 멀리건 그리고 길 에반스, 이들의 공동 작품이다.
(여기에 이들보다 역할이 작기는 했지만, 중요한 인물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나중에 ‘모던 재즈 콰텟Modern Jazz Quartet’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존 루이스John Lewis도 있다.)
제리 멀리건과 길 에반스, 이 두 사람이 결국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한 것은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의 요인이 컸다. 앨범을 녹음하기까지 멤버들이 딱 정해져 있는 정식 밴드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것은 누구의 프로젝트다.' 하는 동의 하에 시작한 작업도 아니었다. 원래는 계약된 레코드사조차 없었던 그냥 느슨하게 결합된 소규모 학회 같은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일즈 데이비스는 손수 연습실을 예약하고 연주자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데서부터 공연을 위해 공연장을 섭외하고 나중에 레코드사와 녹음 계약을 따내는 데까지 일종의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하며 온갖 궂은 일을 홀로 다 처리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싹싹하거나 포용적인 리더쉽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화끈한 성질머리로 비지니스적인 업무들과 자잘한 갈등들을 저돌적으로 뚫고 나갔다.
애쉴리 칸Ashley Kahn의 책 'Kind of Blue' 32p에 실린 'Birth of The Cool' 앨범 관련 녹음 참여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처럼 앞장서지 않았다면 중간에 파토 났을 프로젝트였다. 다들 그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었다. 제리 멀리건과 길 에반스가 이 앨범의 음악적 차원에서 중추 역할을 했다면, 마일즈 데이비스는 음악적 차원 뿐 아니라 조직관리적 차원에서까지도 중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앨범의 또다른 음악적 중심이었던 제리 멀리건과 길 에반스에 대해 소개하자면, 우선 제리 멀리건은 프로 뮤지션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음에도 음악 이론과 편곡을 깊이 연구한 학구파였다. 제리 멀리건은 애칭이 제루Jeru였는데, ‘Birth of The Cool’ 수록곡들 중에는 그의 애칭을 딴 <제루Jeru>라는 제목의 곡도 있다.
한편, 제루는 이 앨범 녹음 후 3년 뒤인 1952년 L.A.로 이주해 쳇 베이커Chet Baker를 만나게 되고 ‘피아노 없는 4중주단’을 함께 결성해 활동한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크게 발전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제루의 ‘피아노 없는 4중주단’ 활동이었다. 쿨 재즈의 핵심에는 마일즈 데이비스보다 제리 멀리건이 훨씬 더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Jeru,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또 다른 중심 인물인 길 에반스는 재즈 오케스트레이션 전문가다. 훗날 1950년대 후반을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한 서정주의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와도 이름이 유사한 길 에반스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적 동지였고,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에 거쳐 중요한 오케스트라 앨범 몇 장을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더 작업한다.
더불어, ‘Birth of The Cool’ 앨범 프로젝트가 실은 바로 이 길 에반스로부터 시작된 작업이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의 빅밴드 시대가 저물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소규모 캄보 편성의 비밥Bebop 시대가 열리게 된다. 대부분 음악 장르들이 시작 국면에서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대신에 싱싱한 생명력과 과감한 저돌성을 매력으로 뽐내기 마련이다. 즉흥 연주를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비밥 재즈는 특히 더 그러했다.
스윙 클럽에서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대형 악단의 일원으로서 악보에 정해진 대로 틀에 박힌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이 영업을 마친 클럽에 새벽까지 몇몇이 남아서 소규모로 마음껏 돌아가며 술에 취해 즉흥 연주를 하던 음악 놀이가 비밥의 시작이었다. 그런 만큼 초기 비밥은 대단히 자유롭고 거친 음악이었다.
이 시리즈의 앞쪽에서 소개한 앨범 ‘Jazz at Massey Hall’은 그보다는 훨씬 더 정제되기는 했지만 비교적 초기 비밥에 가까운 야성미를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이 시기, 길 에반스는 서양 고전음악의 이론적 바탕 위에서 비밥 재즈에 대해 깊고 진지한 고민을 품고 있었다. ‘Birth of the Cool’ 수록곡들은 길 에반스가 뉴욕 55번가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음악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갖춘 젊은 재즈 연주자들을 매일같이 불러모아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던 것이 계기가 되어 녹음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길 에반스의 집은 건물 지하실에 있었다. 그 집에는 서양고전음악 레코드들은 물론이고,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책이나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시집 같은 책들이 놓여 있었고, 베키Becky라는 이름의 고양이도 살고 있었다. 그 집에 모여들던 젊은 연주자들 중에 애칭 제루Jeru로 불리던 제리 멀리건이 있었고, 마일즈 데이비스도 있었다. 특히 제루는 아예 길 에반스의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길 에반스와 함께 살기도 했다.
길 에반스와 마일즈 데이비스
서양 고전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진지한 토론과 지적인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만큼, 여기서 소개하는 곡 <Bobplicity>는 물론이거니와 ‘Birth of The Cool’ 앨범 전체가 초기 비밥이 놓치고 있던 정제된 세련미를 그득 풍긴다.
뉴욕에서 녹음되었지만, 뉴욕 재즈광들의 열기 가득한 지하 재즈 클럽 테이블보다는 태평양 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휴양지 작은 호텔의 라운지 소파에 둘러앉아 음악 세미나를 여는 지성인들의 음악 같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52년에 제루Jeru는 서쪽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다.
제루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뉴욕의 겨울이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아니면 뉴욕의 지하 재즈 클럽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였을까. 어쩌면 정말 태평양 바닷바람을 좇아서였을까.
그 시기 헐리웃의 성장과 함께 서부권 음악 생태계도 크게 팽창함에 따라 일자리가 많아져서 갔다고 답하는 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 아무튼 제루는 동쪽에서 자라난 쿨 재즈라는 어린 묘목의 가지를 서쪽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는 커다란 나무에 접붙이기 했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쿨 재즈가 된 것, 쿨 재즈가 비로소 온전한 쿨 재즈가 된 것은 제루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온 덕분이었다.
Jeru,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
눈 감고 앉아 몸에 힘을 빼고 <Boplicity>를 들어보자. 볼룸은 살짝 낮추자. 관악기들을 빠져나온 소리들이 소금기 머금은 선선한 바람결이 되어 귓가를 스친다. 지성을 동원해 재즈광들의 열기를 딱 좋은 선선한 온도로 식혀 낸 정교한 멜로디와 리듬, 차갑지도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서부 연안의 선선한 바닷바람 같은 상쾌한 온도의 지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녹음실의 그들도 연주 중에 모두 함께 눈 감고 서부 해안의 바닷바람을 상상하지는 않았을까.
부록11)
제리 멀리건, 제루Jeru의 1963년 앨범 ‘Night Light’ 가운데서 <Prelude in E Minor>를 들어보자.
19세기 서양고전음악의 낭만파 피아니스트 쇼팽의 피아노 곡을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