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답이다'를 텍사스 들판에서 뒤늦게 배웠다.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가르쳐 준 것들

by 사이의 삶

'운동은 답이다'


가수 김종국 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의 무게를

나는 마흔 가까이,

타국 땅에 던져진 후에야 비로소 뼈저리게 실감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운동은 아주 먼 얘기였다.

그 대가는 냉정했다.

낯선 미국 생활의 긴장감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괴롭힌 건

삐걱 거리는 허리와 체력이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에너지는 결국 몸이라는 그릇의 크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좀 더 어렸을 때 깨닫지 못했을까.


미국에서 좀 더 적응하기 위해

나는 '생존 근육'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시간에서는 고등학교 부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한 달 100달러 남짓한 비용으로 온 가족이 수영장과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슬라이더 놀이기구와 사우나까지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텍사스로 넘어와 마주한 시스템은 더 파격적이었다.

앱 하나로 필라테스, 복싱, 요가, 스피닝, 바레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멀티 패스 시스템.

심지어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보육해 주는 시설도 있었다.

한국식의 섬세한 교정을 기대하다가

클럽처럼 쾅쾅 울리는 음악과 파워풀한 기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뷔페처럼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그 시스템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한 달 25달러로 전국 체인점 이용이 가능한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플래닛 피트니스'로 정착하며,

미국이 얼마나 운동을 생활 속에 녹여 놓았는지 실감했다.


남편은 동네 크로스핏을 다녔는데,

컨테이너 건물 속 화려한 기구들 없이,

아기띠를 매고 운동하는 아빠들을 보며,

한국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풍경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점심시간 축구가 금지된다는 뉴스를 본다.

안전 등의 이유라지만, 텍사스의 풍경과는 극명히 다르다.

미국은 운동에 소위 '미쳐 있는' 나라다.

운동부 점퍼를 입는 것이 최고의 훈장이 되고,

운동 잘하는 아이가 리더로 존중받는 문화.



오후 5시경 황금빛 노을이 너른 필드에 내려앉으면,

나는 트렁크에서 캠핑 의자를 꺼낸다.

내 옆으로 수십 개의 의자가 나란히 펼쳐진다.

미국 부모들에게 이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가장 뜨거운 응원석이자 쉼표다.


축구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필드로 나가는 아들의 눈빛을 본다.

공 하나에 온몸을 던지는 아이들의 진심은

웬만한 프로 경기보다 뜨겁다.

이곳에서 운동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규칙을 익히고, 패배를 견디며, 팀원과 소통하는 삶의 리허설이다.

아이들은 교과서가 아닌 들판 위에서 인생을 버텨낼 밑천을 쌓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 운동은

멋진 몸매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일상을 버텨내는 정직한 투자다.

만약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좋아하는 운동 하나쯤 진심으로 즐기며 몸 쓰는 법을 배웠더라면

어려운 순간에 좀 더 여유로웠을까.


테니스 코트와 골프장, 태권도장 축구장을 오가며

우리 가족이 배운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예약 전쟁 없는 넓은 필드와 어디에나 널린 공공 코트.

이 넉넉한 인프라가 미국인들의 여유로운 미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 가족은 일상을 지탱할 근육을 단련한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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