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여름
너를 보내며 너를 기록한다.
너는 한해의 절반을 가장 가운데에 자리 잡고 청량한 척 나를 속이고 우리를 속였다.
너와 함께 공유하는 모든 감정은 담요를 뒤집어 쓰고서라도 가장 시원한 바람으로 틀어놓은 한여름의 에어컨과 같았다.
더운 여름철 더위 속의 오아시스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 오아시스가 범람한 바다가 된 마냥
파도치듯 빠르게 내게 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꿉꿉한 습도에서 해방을 주지 않느냐며 선선한 가을바람을 떠올린다면,
메마른 단풍잎 띄워 나르는 숲의 푸른빛을 앗아가는 저승사자 같다고 쏘아붙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낮은 온도로, 가장 빠른 바람으로 나를 찾아온다.
내게 충분한 담요가 준비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날에는, 옷장 속에 꼭꼭 개어둔 겨울 이불이라도 꺼내낼 것이다.
내게 지나친 건조함으로 마음을 시리게 하는 날에는 너의 향을 가득 담은 크림을 바르고,
내게 긴 겨울을 버티며 꼭꼭 묻어둔 케케묵은 향을 데리고 나온다면,
새삼 낯선 듯 반가운 듯 착각해주며 네가 내 곁을 잠식하게 둘 것이다.
그렇게 너와 계절을 꼭꼭 씹어먹으며 모든 포화에 잠겨 허우적거리면서도
너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너는 내게 지독한 여름감기를 선물해주겠지.
그 감기에 앓고 젖어있는 시간도 너를 삼키는 일일 테고,
쉬이 너를 넘기겠다고 약을 구하지도 않을 테다.
그렇게 너를 끔찍하게 새겨두고 떠날 것이다.
네가 떠난 자리를 나도 떠나며, 매듭을 지어낼 것이다.
이 매듭이 한해가 지나고 다시 풀어내고 싶어질지 그대로 굳어버려서 싫어질지.
설레는 너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