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너지의 총합은...
휴일에 빨래하는데 남편이 멀뚱히 쳐다보며 한마디를 한다.
“찬물에 뜨거운 물 넣으면 섞이지, 이걸 처음 온도로 돌이킬 수 있어?”
“찬물, 더운물 분리할 수 있냐고?”
“응, 처음하고 똑같이”
“그건 좀 힘들겠는데?” “양말이나 뒤집어 놓지 마. 당신은 왜 그럼 처음 신었을 때처럼 그대로 못 내놓는데?”
“그럼 식은 커피는 처음 온도로 돌이킬 수 있어?”
내 말은 딴 나라말인지 자기 말만 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지.”
“아니 그런 거 사용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 뭐래. 수수께끼야 뭐야.”
무슨 자격증 공부인가를 하는 옆지기가 에너지보존법칙이라나 열역학이라나 뭐 그런 게 있는데 고립계인 이 세상에서 모든 변화되는 에너지의 전, 후의 합은 일정하게 보존된다고 장황 연설을 한다. 형태만 바뀔 뿐 이 세상에선 그렇단다. 위의 대화는 그런 과정 중에 한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이야 돌이킬 수 없지, 생각하다 밥때도 됐고, 얘기 듣느라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고기랑 호박을 꺼내놓고 유튜브 이모를 켜는 날 보면서 넌 참 단순한 걸 봐서 좋겠단다. 어 좋아죽어. 요리도 과학이야 왜 이래.
세상이 처음 생긴 대로 꾸준히 순정하게 유지만 된다면 전쟁이 왜 있고, 싸움이 왜 있나. 남이 가지고 있는 걸 뺏으려는 게 전쟁이고, 내 맘대로 휘두르지 못하면 따돌린다. TV만 켜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남의 뜨거운 행복을 보면 나는 겨울 찬물 뒤집어쓴 거처럼 왜 이리 지지리 궁상인가 자괴감에 빠지는 마누라를 열역학적으로 한 번 설명해봐 봐,라고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요는 내게 없는 건 다른 데 있어서 서로 간의 온도는 우주적으로 봤을 때 같다? 뭐 내 식대로 이해하고 말았다. 나는 때로 누굴 따돌린 적 없었나, 되짚어도 보면서.
물리적인 에너지 아닌 마음 에너지의 전후 총합도 일정하게 유지만 된다면 좋고 나쁘고에 울고 웃을 일 없겠네. 오늘은 기분 영 아니지만, 설명이 가능한 현상으로써 다음엔 기분이 좋을 예정일 테니.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듯이, 나라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듯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원자의 집합체로 살아가는 게 내 선택이 아니듯이 이미 뜻이 있는 존재로 태어났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적이다. 광대무변한 세상에서 어찌한 연이 닿아 글로 세상 이야기를 펼쳐 나누는 것도 생각하면 행복이다. 선택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선택할 자유가 남았으니 또한 고맙다. 이마저 우주적 수식일 따름이라 해도 좋다. 나는 우주를 살고 있다기보다 고유하고 유한한 존재로 코앞을 잘 사는 것을 내게 주어진 사명으로 여기며 여전히 살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