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야

회복으로 조금씩, 조금씩

by 무연


아직 나는 불안하다. 이건 아주 솔직한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회복을 '끝이 있는 여정'처럼 말한다. 고통의 시기를 지나고, 회복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밟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편안한 일상으로 접어든다고. 하지만 나의 회복은 그런 단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아주 많은 순간이 위태롭다. 마음속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짓고는 있지만 그건 벽돌 몇 장을 간신히 얹은 집이고, 한 번의 감정 폭풍에도 무너질 수 있는 가느다란 구조물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과거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을. 무너짐을 인식하고, 위태로움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멈추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시작에는 ‘이해’가 있었다. 나에 대한 이해. 그건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였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왜 이토록 아픈지’


이유도 모른 채 고통에만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이 간절했다. 병명이라도 붙으면, 진단이라도 내리면, 내 고통이 객관화되고 이해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내가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심연을 꿰뚫는 정의 같기도 했고,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요약해버리는 폭력 같기도 했다. 나는 진단명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람이고, 몇 줄의 기준으로 판단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연과 층위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해'를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존재’로서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누군가가 나를 해석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심리학은 그런 나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이 학문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지금 나는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가끔은 심리학이라는 거울 속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나를 보게 되어 무서울 때도 있다. 내 감정의 기복, 애착의 불안, 회피와 집착, 시험과 자해. 그 모든 것이 이론으로 설명될 때면 나는 내가 철저히 해부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공부는 나에게 '위로'였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모르는 나와 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해는 늘 변화보다 먼저 왔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뒤에 있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알아가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나를 사랑해야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야 겨우 그 출발선에 선 사람이다. 멀고 먼 여정이 될 것이다. 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날 조금씩 알아간다는 건 세상을 조금씩 더 따뜻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라는 걸. 그리고 그 의지가 나를 계속 이끌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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