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아주 큰 힘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나는 그런 선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나는 그저 늘 생존하느라 바빴다.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파도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내가 뭘 원하고, 뭘 하지 않기를 바라는지조차 생각해볼 틈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망망대해에 떠밀려가는 돛단배 같았다. 나에게는 방향키도 없었고, 돛도 찢겨나간 채, 바람 부는 쪽으로, 물살 치는 대로 그저 실려 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흔들면, 나는 흔들렸고, 누군가가 떠나면, 나는 무너졌다. 그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그 시절의 나에겐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말이었다. 나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늘 무력한 수용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자해를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한 날. 또 어떤 날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기로 다짐한 날. 그 날들을 지나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구나.’
‘견디는 것도, 멈추는 것도, 말하지 않는 것도
전부 나의 선택일 수 있구나.’
내가 이전에 했던 수많은 반응들, 무너지고, 울고, 화내고, 도망쳤던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안에도 아주 작고 명확한 선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들을 지금껏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건 무지였다. 혹은, 외면이었다. 아니면, 선택이라는 권한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채 살아왔던 기억의 잔재였다.
나는 이제 선택할 수 있다. 항상 할 수 있다. 상황이 아무리 극단적이어도, 감정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깨달음은 거창한 변화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들부터였다. 예를 들면, 오늘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쉼을 선택하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은 삼키지 않기로, 불편한 자리에 나를 억지로 앉히지 않기로, 내가 원하지 않는 대화에서 침묵을 선택하기로.
이런 선택들이 조금씩 쌓였다. 그리고 그 쌓인 것들이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예전의 나는 타인의 선택에 끌려가는 사람이었다. 혹은 ‘자신이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삶’을 살았다. 누가 이 길이 옳다고 하면 따라갔고, 누가 이 말이 정답이라고 하면 받아들였다. 그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인생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선택된 인생에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게 회복이었다. 나를 회복한다는 건,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나의 감정과 반응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외부의 상황에 휘둘려 내 삶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선택의 권력을 나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 어떤 리듬으로 숨 쉬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고 싶은지를 내가, 나 자신에게 묻기로 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밀려서 살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조율자로서, 하루하루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 위에 하루를 쌓고, 관계를 쌓고,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다시 만들어간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삶을 내 손에 다시 쥘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작지만, 아주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