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겨운 날들이여, 나를 떠나가길
요즘 나는 서울에서의 30년을 마치고, 부모님의 품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쉼이라는 이름의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이전의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어이 이겨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존재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었다. 버텨야 했고, 살아내야 했고, 증명해야 했다. 그곳에서 무너지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나는 결국, 무너졌다.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바닥에 엎드린 채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두고 낯선 거제로 내려갔다.
처음엔 이곳의 고요가 두려웠다. 침묵은 내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 눌러 온 감정들을 어김없이 불러냈기 때문이다. 어디 한 곳 나를 숨길 소음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서서히 ‘살고 있음’을 느꼈다.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이 더 많고, 극적인 장면보다 지루한 순간들이 대다수인 이 낯설고 따뜻한 일상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짓고 있다.
심리학을 향한 열정도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오래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고 싶다는 절실한 욕망이 나를 계속해서 공부하게 한다.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고, 밤에 눈을 감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나를 가꾸는 중이다.
물론, 감정은 여전히 내 삶을 흔든다. 아무 일 없는 하루에도 문득문득 그리움이 솟고, 쓸쓸함이 밀려오고, 이유 없는 분노가 나를 덮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감정들이 나를 삼킬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그 감정 위에, 조금은 무겁지만 분명한 ‘의지’를 얹고 있다.
한때, 나는 죽음을 꿈꿨다. 그게 내게 가장 쉬운 출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삶은 고통이었고, 감정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회복을 꿈꾼다.
그 길 위에는 여전히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고 어쩌면 다시금 절벽 끝에 설 날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며 나는 나를 더 많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나는 완전히 회복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전히 망가져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단지, 매일의 감정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도, 절규하는 마음을 끌어안고 있는 날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은 드라마 속 대사처럼 한 발의 연속이었다. 쉽지 않았다. 때로는 엎드리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붉은 기 가득했던 나의 모든 발걸음이 되려 나를 구원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감정, 그거 어떻게 먹는 건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