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즈

by 무연


거제에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엄마의 거제 생존을 책임진 두 축을 만나게 됐다. 엄마가 낯선 거제에서 생동감 있게 살 수 있는 원동력, 엄마의 절친,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모즈’라고 부르게 될 사람들이다.


이모즈라고 해서 많은 건 아니다. 아파트에는 수많은 ‘이모’들이 있지만, 엄마의 절친은 딱 두 명. 그중 한 명이 바로 대장 이모다.


대장 이모라는 별명은 그냥 붙은 게 아니다. 키도 작고, 손발도 작지만, 부리부리한 눈, 야무진 입, 염색 안 한 채 하얗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 주머니에 양 손 찔러 넣고 위풍당당하게 걷는 폼세가 이미 카리스마다. 아마 어릴 적 동네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대장님” 소리 듣고 다녔을 거다.

대장 이모의 특징은 권유형 대화가 없다는 것. 그냥 명령문 하나로 모든 게 끝난다.

“00아, 카페 가게. 나와.”

“00아, 나 지금 산인데, 나와.”

“00아, 나와.”

그 한 마디면 모든 일정이 취소된다.

놀라운 건, 내가 그걸 무례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의지박약인 나를 끌어주는 구조대장 같달까. 그리고 거절을 해도 이모는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 이게 또 대장의 여유다.

대장 이모는 동네의 대모(大母) 같은 존재다. 요리할 때 손이 워낙 커서, 가족모임이 열리면 전부 대장 이모네로 집결한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대장 이모를 부르면 된다. 정말 한 큐에 해결된다. 심지어 내가 대장 이모에게 “아, 요즘 떡볶이 땡긴다…”라고 툭 던진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우리 집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 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래서 내가 그녀를 대장이라고 부른다.


다음은 미미 이모.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 깊은 사람이다. 나는 원래 사람의 첫인상에 많이 좌우되는 편이라, 처음엔 언뜻 무서워 보이는 미미 이모에게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모의 속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게 된 이후부터, 우리 관계는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부풀어 올랐다. 심지어 내가 이모즈 모임에 끼지 않을 때도, 엄마를 통해 “미미 이모가 네 안부 묻더라. 너 되게 걱정해.”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찡해진다.

미미 이모라는 별명은 당연히 미미라는 이름의 푸들 덕분이다. 이모를 만나면 99% 확률로 미미가 같이 온다. 그래서인지 미미 이모를 만나면, “사람이냐, 강아지냐, 둘 중 누굴 먼저 안아야 하나” 라는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모즈는 말 그대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즐거운 일엔 파티를 연다. 어느 날은 목욕탕에서 만나 사우나, 카페로 이어지고, 다른 날은 번개로 모여 노래방을 가거나 치킨을 먹는다. 나는 특히 번개가 좋다. 갑작스러운 호출이 무려 에피소드의 소재를 가져다주니까. 아주 음흉한 속내가 아닐 수 없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거제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모즈를 만날 일도 없었을 거라고. 그럼 나는 지금보다 훨씬 심심하고, 훨씬 외로웠을 거다. 그래서 오늘도 대장 이모의 “나와” 한 마디와, 미미의 깡총거림에 감사하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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