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잘공!

by 무연


엄마가 목욕탕을 사랑한다면, 아빠가 아파트 내에서 가장 애정하는 곳은 탁구장이다. 물론 아빠는 건강 문제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마다 헬스장도 이용하지만, 탁구장은 말하자면 아빠 나름의 놀이터와 비슷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이면, 점심을 먹고 난 2~3시쯤에 자연스럽게 아빠가 말한다.

“가자.”

나는 안다. 그 말의 목적지가 탁구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아파트 입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그곳엔, 세 대의 탁구대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대엔 거의 사람이 없다. 덕분에 우리는 종종 그곳을 “우리 전용 경기장”처럼 쓴다. 때문에 혹여 가끔 누가 들어오면, ‘아, 관중이 왔네’ 하는 마음이 든다.


서울에 살 땐 아빠와 친하게 무언가를 하는 상상은 어려웠다. 아빠는 무서운 존재였고, 어려운 존재였고, 존경하지만 멀리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거제에 와서 만난 아빠는 달랐다. 말투는 부드럽고, 표정은 따뜻하고, 나를 살피는 눈빛이 있었다. 아마 그동안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내려놓고, 섬이라는 여유 속에서 사는 덕분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우리는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면서도, 누가 더 잘 치는지 승부를 가른다. 스매시는 무조건 전력, 힘 조절 따위 없다. 공은 사방팔방 튀고, 줍는 건 늘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빠는 껄껄 웃는다. 내가 네트를 살짝 맞혀서 공을 아슬하게 넘기면, 아빠의 표정은 “이건 반칙이다” 모드. 내가 헛스윙이라도 하면, 아빠는 “이 기술 이름 뭐냐” 하며 폭소. 가끔은 ‘이게 무슨 기술인가’ 싶을 정도로 손을 파닥거리며 친다. 결과는 대부분 헛방이지만, 그마저도 웃기다.


그러다 방심한 순간, 아빠의 회심의 스매시가 날아온다. 공이 눈에 잡히기도 전에 내 코트를 스치고 사라진다. 뒤에서 데구르르 굴러가는 공만이 ‘무언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빠는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외친다.


“오잘공!”


오늘의 잘 친 공이라고 외치는 그 순간 아빠의 표정은 마치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우승한 사람 같다. 승부욕이 발동한 나는 씩씩거리며, “이건 무효야!” 라고 외쳐도 소용없다. 공은 이미 유효했고, 나는 그걸 못 쳐냈으니까.


오잘공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등장한다. 어떤 날은 아빠가, 어떤 날은 내가. 새로운 오잘공이 나오면, 지난 오잘공은 자연스럽게 은퇴한다. 영상으로 찍으면 용량 초과가 될 테니, 우리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그날의 웃음으로 남긴다.


거제에서 쌓이는 추억은 생각보다 별 게 아니다. 이렇게 하루의 한가운데서, 탁구대 위로 오르내리는 공과 서로를 향한 “오잘공!”의 함성 속에, 아빠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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