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대장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와!”
아…. 이 목소리.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소집 명령이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든, 나갈 상황이 되든 말든 관심 없다. 다행히 그날은 상황이 허락돼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
이모가 만나자고 한 곳은 아파트 옆에 있는 산의 초입. 그래서 나는 안심했다.
‘둘레길 정도겠지. 대장 이모도 나를 생각해주겠지.’
그 생각은 산뜻했고, 동시에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처음엔 둘레길을 둘러둘러 가는 듯하던 이모가 갑자기 방향을 튼다. 오르막. 그것도 그냥 오르막이 아니라 ‘심혈관 터질 것’ 같은 경사.
“어, 이건 아닌데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이모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따라야 했다.
한여름. 뙤약볕. 습도는 사우나급. 땀은 줄줄, 날파리는 환장을 하며 나에게 달라붙는다. 숨이 턱밑까지 올라오고, 다리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이모는 내 상태를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쯤 되면 대장 이모는 대모(大母)가 아니라 PT 트레이너다.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가 걷는 건지, 내 다리가 나를 끌고 가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에서 이모가 미운 감정이 올라올 정도로 쾌활하게 말했다.
“다 왔다.”
정말 길이 완만해지고, 숨이 좀 돌아왔다. 멈춘 곳에서 나는 무릎을 부여잡고 헐떡였다. 속으로 다짐했다. “역시 등산은 최악이다. 두 번 다시 안 해.”
그런데, 이상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희열’이라는 게 올라왔다. “이걸 내가 해냈네?” 땀에 흠뻑 젖은 기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상쾌함이 살짝 들었다.
대장 이모가 잘 했다는 듯 내 등을 퍽, 치며 물병을 건넸다.
“앞으로 이 길을 자주 애용해 봐! 살 금방 빠질 거야!”
아찔했다. 이모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이건 분명히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살찌는 건 순식간인데, 빼는 건 이렇게 지옥이구나…. 그리곤 되지도 않는 다짐을 한다.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와 같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모의 입에서 나온 말.
“여기가 끝 아니야. 이제 중간이야. 정상 가려면 저기로 더 올라가야 해. 나중에 정상도 한 번 가자!”
그 순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절대 산 정상엔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한 결심 중에 제일 확실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바늘(정확히는 디지털 숫자)이 꿈틀거렸다. 말이 되지 않는 체중 감량. 그 순간, 어제의 결심이 휴지 조각처럼 날아갔다.
“정상…. 갈까요?”
대장 이모는 한 번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참…. 의지가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