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를 키우지만, 엄밀히 따지면 강아지파다. 내가 고양이를 선택했던 건, 강아지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일에 치여 하루에 산책 한 번 시켜줄 여유조차 없었고, 고양이도 물론 분리불안이 있지만, 사람에게 의지하는 강아지를 하루 종일 혼자 놔두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데려온 게 지금의 고양이 레오다. 그 말인즉, 나는 지금도 강아지를 보면 환장한다는 얘기다. (레오야 미안, 하지만 이건 사실이야.)
고양이를 키우기 전, 서울에서 살 땐 강아지 카페를 일부러 찾아갈 정도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크든 작든 내게 달려와 혀로 얼굴을 마구 핥아주면, 그 순간 나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병든 내 마음은 조금씩 녹았다.
그런 내가 거제에 와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강아지가 있었다. 바로 감자와 콩이. 감자와 콩이는 엄마를 통해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엄마가 거제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이모’, 통칭 왕이모가 키우는 강아지들이다. 대장 이모가 카리스마 담당이라면, 왕이모는 친하게 지내는 이모들 중 연배가 가장 높아 ‘존경의 왕관’을 쓴 분이다.
감자와 콩이는 같은 종이지만, 두 달 차이로 태어난 자매견이었다. 언니, 감자는 늠름하고 챙기는 성격, 동생, 콩이는 애교와 살가움이 넘친다. 둘이 함께 있으면 마치 ‘리더 언니 + 애교쟁이 막내’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왕이모는 항상 집 문을 열어두듯 나를 반긴다. 처음 안면을 튼 이후, 나는 틈만 나면 감자와 콩이를 보러 갔다. 그러면 두 녀석은 내가 왔다고 목청이 터져라 짖으며 달려온다. 그 목소리의 볼륨은…. 이웃집 강아지도 덩달아 짖을 수준에 달했다.
특히 콩이는 나만 보면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배를 까뒤집는다. “자, 어서 만져라.”라는 사인이다. 그러면 나는 눈이 뒤집히고, 콩이의 볼에 내 뺨을 비비며 애정을 퍼붓는다. 문제는, 아무 관심 없는 척하던 감자가 그 모습을 보다 말고 슬쩍 다가와 엉덩이를 내민다는 것이다. “나도 차례야.” 그걸 거절할 이유가 세상 어디에 있겠나.
감자랑 콩이랑 놀다 보면 시간이 사라진다. 할 일이 있어도, 약속이 있어도, 다 뒤로 미룬다. 집에 가려 하면 자꾸 눈에 밟혀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왕이모네 집 문을 닫고 나와도, 마음 한쪽은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다.
목욕탕이나 아파트 단지를 오가다, 가끔 감자와 콩이가 산책을 나오는 걸 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멈추고 달려간다. 양손을 벌리고 “감자, 콩이!”를 외치면, 두 녀석은 또다시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며 달려와 나를 반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환영받는 인간이 된다.
아, 지금도 그리운 감자와 콩이.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나를 환장 모드로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