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성향을 뒤늦게 깨우친 자의 최후
“나 이렇게 죽는 건가?”
대학 기숙사에 산 지 2년쯤 되던 어느 날, 처음 겪어보는 생소한 통증이 위에서 강하게 느껴졌고 겁에 질린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스트레스성 위경련이었다. 2인실 기숙사 생활과 시험기간이 주는 스트레스가 겹쳐 이 사달이 났다고 직감했다. 생존을 위해 탈출하기로 했다. 원룸 말고 기숙사에 살라던 엄마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엄마, 나 여기서 도저히 못 살겠어. 당장 원룸 구해서 나갈래. ”
2인실은 왜 내게 고통이었는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룸메이트와의 불화? 사실 그 반대다. 2년 동안 3명의 룸메이트와 지내며 갈등이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룸메이트들과 헤어질 때 애정 어린 긴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들 중 흔히들 말하는 빌런은 없었고 다들 착했지만 원인은 나의 예민함과 지독한 개인주의 성향, 그리고 일말의 갈등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성격에 있었다.
특정 누구와 한 방에 살아서 힘들었던 것이라기보다, 나는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매우 힘들어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타인이 곁에 있으면 항상 의식하게 되어 완전한 릴랙스가 불가능하다. 그걸 20대가 되어서야 깨우쳤다. 그땐 ‘기숙사’라는 존재가 너무나 당연했고, 엄마에게 설득당해 그게 유일한 선택지인 줄 알고 입주해 버렸기에 나의 성향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2인실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말이다.
또한 갈등과 싸움을 죽어도 만들지 않으려는 성격 탓에 그 좁은 닭장 같은 기숙사 방에서, 어찌 보면 사람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억지로 평화로운 텐션을 유지하려 온갖 애를 쓰며 무리를 하기도 했다. 나의 불편감을 전혀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고 그저 둥글둥글하고 어색하지 않게 잘 지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둘이 그 좁은 방에서 씻고, 자고, 생활하는데 둘 사이의 기류가 어색하거나 불편하다면 나는 혀를 깨물고 죽거나 밖에 나가 복도에서라도 자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멘탈 개복치? 소심쟁이?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와 에너지에 크나큰 영향을 받는 유형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쉬러 들어온 공간마저 열심히 애쓰는 공간이 되어버려 마음 편히 쉬는 것이 불가능 해졌다. 나 자신이 어떻든 뒷전이고, 우리 둘이 하하 호호 지내면 다인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성향을 모른 척한 채 영원히 피에로 마냥 연기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신경과민과 위경련이라는 사이렌이 울렸고 나는 나를 위한 공간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탈출 결심을 한지 단 5일 만에 원룸 계약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발품 팔아 혼자 씩씩하게 부동산에 들락거리며 학교에서 5분쯤 떨어진 거리의 원룸을 구했다. 여러 명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큰 방이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21살 겨울, 무척 기뻤던 나는 이삿짐을 옮기면서도 힘들어하기보다 앞으로 펼쳐질 새 인생에 두근거렸다.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들떠 이제 만사 해결이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폭 덮었던 첫날밤.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에 들뜨던 심장이 다시 차가워졌다.
“드르렁드르렁~”
옆방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였다. 아차 싶었다. 방음이 너무 잘 되는 기숙사에만 살다 보니 옆방 사람의 생활 소음이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의 본가는 주변에 논과 밭 밖에 없는, 이웃의 소음 따윈 있을 수 없는 시골의 주택이었다. 평생 ‘옆방 소음’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살던 나는 극적인 기숙사 탈출 후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꺼-억” “아하하하하!” “(알람 소리)”
이웃의 생활 소음이란 참으로 다양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각종 사적인 소리를 매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게다가 주 1~2회 정도 정기적으로 친구를 초대해 신나게 수다를 떠시는 이벤트까지…! 뭐 자기 집이니 내가 뭐라고 할 순 없고, 나도 친구를 초대하는 입장이기에 더더욱 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귀마개와 더더욱 친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만든 것은 옆방이 내는 소리가 아닌 ‘내가 내는 소리’였다. 옆방의 소리가 저렇게 잘 들린다면 분명 내 생활 소음도 잘 들릴 것이었고, 걱정이 많았던 나는 생리 현상 하나도 눈치 보며 해결했다. 뭐 하나를 하더라도 ‘지금 이게 들리나?’ 신경을 쓰며 볼륨을 조절하게 되었다. 특히나 혼자 있을 때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을 억지로 누를 수밖에 없어서 점점 불행해졌다. 부자유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웃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나, 그냥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사적인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긴장되게, 께름칙하게 만들었다. 평소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범위와 하지 않는 범위의 경계가 확실한 나에게 무방비한 채로 놓인 그 생활은 매 순간 전쟁 같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말이다.
게다가 각자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 방 문 앞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1층 현관에 방범장치가 없어 누구든 드나들 수 있었기에 막말로 내 방문 앞에 있는 사람이 이웃인지, 범죄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경계심과 의심이 매우 많은 나는 이런 환경에 혼자 살며 더더욱 민감해져 갔다. 첫 자취를 하며 즐거운 추억도 물론 많았으나 이 이상 살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다. 결국 계약기간이 끝난 후 재계약은 하지 않았고 나는 다음 이사할 집을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총력을 가했다.
“좋아! 원룸 한 번 살아봤으니 이제 다음 집은 더 꼼꼼히 모든 걸 따질 테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또 계산하는 성격인 나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소음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나? 소리에 민감한 내 성향을 고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만한 원룸을 찾는다는 건 너무 욕심인 거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 서울의 주택 같은 곳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참고 사는 게 답일까?
그러다가 옥탑방이라는 아이디어가 머리에 스쳤다. 처음엔 생각했다. “에이~옛날 드라마에 나와서 미화된 공간인걸. 옥탑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 그렇다. 아무 정보가 없기에 막연하게 겁이 났다. 하지만 어느새 무서운 속도로 온갖 웹사이트에 검색을 하며 몇 시간을 훌쩍 보낸 스스로를 보며 “아, 나 진심이구나.” 깨달았다 (소음 문제에 대한 고려도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항상 자유로움과 낭만을 사랑했던 나였기에 옥탑 특유의 이미지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었다).
며칠 동안 옥탑방의 장단점과 주의점을 모두 정리했고 원룸의 조건과 조목조목 비교하며 결정의 화살을 조준했다. 처음엔 농담 삼아 말하다가 결국 무서운 속도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버린 옥탑의 승리로 끝났다. 부동산을 운영하시는 친구의 어머니께서 극구 반대를 하셔서 흔들리기도 했으나, 인터넷에서 본 극단적인 단점들에 지레 겁먹기도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난 항상 이런 식인걸. 매사에 계산을 하고 모든 각을 재지만, 결국 큰일 앞에서는 마음이 가는 쪽으로 결정한다. 당시 나는 자유가 갈급했기에 독립된 공간이 그토록 끌렸다.
옥탑에 산 지 1년 정도 된 지금, 물론 단점도 있지만 일단 기숙사와 원룸에 살 때 날 괴롭혔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깨끗이 사라졌다. 이웃의 알람 소리와 방귀소리는 이제 까마득하다. 노래는 아침에도 밤에도 부르고, 울고 싶으면 눈치 보지 않고 엉엉 울기도 한다. 밤에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그리고 싶으면 그린다. 혼자 공부할 땐 아무런 소음이 없어서 독서실 같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어도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환경에 있을 때 불편한지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단순히 장소에 대한 기호 파악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진솔한 탐구의 과정이었다. 한 공간에 둘이 있을 때 기류에 민감하며, 하루 끝에 혼자서 생각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것. 서로 모르는 사이에 공유되는 사적인 소리들에 매우 곤란해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다른 감각에 비해 청각적 자극에 압도적으로 예민하다는 것.
그렇게 나는 20대 초중반을 거쳐 몸도 아파보고, 신경쇠약도 지칠 만큼 겪으며 스스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기에 항상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내 특성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스스로의 안녕을 챙기는 행위는 꼭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