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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Dec 23. 2024

세상은 열어보지 않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또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  모르긴 해도 세상 일은 모르는 게 진리다.  잘 알지 못해서 어떤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는 게 인생사다. 늘 같은 일만 반복되면 재미없다.  

그럼에도 재미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 있다. 가끔 이어도 술도 마실 줄 모르고 춤도 잘 출 줄 모르고 노래도 못 부르는 진짜 재미없다고 여기는 모임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은 이 모임이 술을 잘 못 마셔 그만뒀을 것이고 춤 잘 추는 사람은 한 번도 춤추러 가지 않았으니 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노래방에 가질 않으니 무슨 재미로 사냐며 탈퇴했을  것 같다.  

그래도 알고 보면 이 모임 그런대로 유지해 나가는 비결이 있다.  특별한 애착은 없어도 오래되어서 그저 그런,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니 할 얘기도 많다. 주제가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다.  감정 약간 상하면 한 달 안 보면 된다.  그러다 만날 시간 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그래, 그래, 그러면서 얼굴 마주 한다.  


오늘은 내가 이런 일이 있으니 커피를 살 게.  그럼 난 케이크를 살 게 한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굳이 몰라도 된다.  알면 아는 대로 축하해 주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축하해 넘어간다. 사람 사는 세상 일이 속속들이 알려고 하면 피곤해진다.  깊이 있게 알지 않아도 되는 일은 가볍게 넘기는 것도 잘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벌써 십오 년 만났다. 초등 6학년 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감투 하나 썼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지금은 공직자가 된 아들도 있고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 자식도 있다.  공직자가 되었다고 축하해 주고 먼 길을 가  결혼한다고  축하해 주고, 그 아이들이  그럭저럭 세상을 아는 나이가 되어 있다.

많이 배웠다고 자식들 자랑도 하지 않고 직장을 잡지 못한 자식들이 있어도 흉도 보지 않는다.  그저  녹록지 않는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내느라 바쁜 자식들을 엄마들이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해 줄 뿐이다.

가끔은 서로에게 선물도 준다.  작지만 정성이 들어 있다. 돈이 많아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절대 못 한다.  받으면 또 해야 하나 고민도 하지만 잊어버리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뭐라 반박하지도 않는다.  담에 하면 되지 뭐.  

세상은 열어보지 않는 초콜릿 상자처럼 저들의 삶도 각양각색이다. 각기 다른 삶의 방식에 조용히 발맞춰가며 오늘도 그저 편안하게 커피를  건넨다.

#오래된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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