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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림자는 새길수록 아름답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특별해도 괜찮다

by 어린왕자

ㅡ추억의 그림자는 새길수록 아름답다


언니는 놀기에 진심이었다고

우리는 웃으면서 게임했는데

언니의 눈빛은

이기고자 한 표범의 눈빛이었다고

그랬나

내가 그때 그랬구나

동생한테 이겨 먹으려고

표독하게 굴었구나

내가 그때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구나

하며

나는 동생들 앞에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웃긴다며 쓰러질 태세다

비석 치기에도 진심이었고

땅따먹기도 진심이었고

구슬 따먹기도 진심이었다

공기놀이가 끝날 무렵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데리러 올쯤

집에서는

고무다라이 가득 코피가 흘러내렸다

저 밑 동네 마을 어귀

아버지가 거나하게 소리 지르며

퇴근을 알릴 즈음

우리는 공기놀이 하다 뿌리치고

집으로 달려가

공부하는 척 흉내내기 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아이 엠 탐

휘갈겨쓰던 영어공책이 선하다

아버지는 알고도 속는다

이제 막 시작했구나 저놈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머리지도로 동네를 그리며

마을 입구부터 산동네까지

어린 시절을 되짚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물방앗간에서의 도둑놈 찾기도

무화과 따 먹던 작당들도

썰매 타던 넓직한 웅덩이에도

지금은 현란한 빌라가 버티고 섰지만


추억의 그림자는

새길수록 아름답다



ㅡㅡㅡ동네 친구들이 일 년에 두 번 한 곳에 모이는 정기모임을 갖는다. 잠도 같이 자고 놀러도 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공유하며 논다. 중학교를 들어갈 무렵 서울로 간 친구는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내려온다. 온밤을 보내며 그 시절 추억을 이야기한다. 똑같은 이야기가 돌고 돌지만 어느 이야기 하나 낯설지 않다. 동네 동생들도 이번엔 불렀다. 기꺼이 와 주었다. 동생들도 함께 세월을 엮어간다. 이제 똑같은 중년이다. 내가 놀고 게임하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동생들이 같은 편먹기를 늘 희망했다고, 웃음기 없는 게임에 그래도 재밌었다고 실토한다. 내가 그랬구나, 지금도 눈빛은 장난 아니라며 옆에 있는 친구가 눈치를 준다. 또 웃는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동네 친구들이 있어 한겨울이 봄날처럼 따습다.



ㅡㅡ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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