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따기로 즐거웠던
내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입소문이 나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 녀석들이 우리 엄마 논술한다라고 떠들고 다니진 않을 테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길 내심 바라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나 나를 잘 아는 지인에게는 광고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나를 선생님으로 보기보다 같이 어울려 사는 아파트 주민의 이미지가 더 커서 오히려 효과를 볼 수 없겠다 여겼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녀들은 나의 아파트 주민이다, 혹은 그냥 평범한 애 키우는 엄마로 여길 것이니 차라리 입 닫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아파트에 같이 사는 아줌마로 보이는 것, 그것이 단점이었다.
차라리 이사 오면서부터 일을 시작해 선생님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처음부터 선생님으로 이사 온 것과 거의 친해지고 살면서 일을 시작해 선생님으로 불려지는 건 정말 큰 차이가 있음을 눈치채고야 말았다.
그러다 하루이틀이 지나고
욕심은 커져가고
하고 싶어 하는 의지는 충만한데 반해
쉽게 회원들이 모여지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특별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배워야 했고 더 알아야만 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시간이 남기 때문에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중앙일보 NIE 논술지도사' 교육과정이었다. 오전에 강의를 듣고 집에 오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녁을 준비해 놓고 수업을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인가를 출석했던 것 같다. 부산 동의대까지 버스를 타고 신문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은 그래도 즐거웠다. 논술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된 선생님들과 함께여서 힘들지 않았다.
중앙일보 NIE 논술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나면 강사도 할 수 있다는 욕심이 컸다. 그 당시는 중앙일보가 꽤 듬직한 보루였다. 타이틀도 좋았고 명함 내밀기도 좋았다. 실제로 강의 시간에 배운 것들을 참고로 논술 시간에 적용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수업 내용도 알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던져주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는데 반해 나의 의욕은 넘쳐났다. 갈수록 자신감이 붙었고 배우고 들었던 것을 그때그때 적용하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내 아이들을 마루타로 삼아야 했다.
NIE 논술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받아 든 순간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아 기뻤다. 강사로 바로 진출하진 못했지만 아이들의 논술 수업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내 이력에도 한 줄 더 용기가 늘어났다. 내 나이 서른 초반 즈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