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가 편해 보이니?
아이가 하루는 내게 스쳐지나듯 물었다.
"엄마, 나랑 엄마랑 하루만 바꾸어 볼래?"
"왜? 엄마 하는 일이 좋아 보여?"
"그게 아니라, 엄마는 나 학교 가면 쉬는 시간이 많잖아."
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저보다 조금 더 편하게 쉬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나 보다. 철딱서니 없기는, 하면서 속으로 핀잔을 주고 말았지만 매일매일 학교를 가는 것이 저에겐 힘들었을까. 아니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일을 그냥 단순히 경험해보고 싶었을까?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단지 엄마의 하루가 편하게 보였던 게 아닐까 싶다. 초등 1학년이었던 아이가 엄마가 하루 온종일을 바쁘게 살고 있는지 어찌 알까마는 섭섭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쨔식, 저는 그리 못 할 거면서, 콱.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나는 서둘러 집안 정리를 해 놓고 서두른다.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한가한 모습은 없다. 오후에 있을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읽어야 할 책을 미리 읽지 못해 허둥대며 읽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소요되니 미리미리 읽지 않으면 낭패보기 일쑤다. 짜식~ 이래도 바꿔볼 건가?
ㅡㅡㅡ
나의 꿈은 확실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예쁘고 우아한 모습에 반해 그때부터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국어 시간에는 사뭇 진지했으며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매일 한자를 접하다 보니 한자에도 제법 능숙해 국어와 한자는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도 아닌, 한자 선생님도 아닌 사설 학원에서 강의하는 정도의 논술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그리 꿈과 멀어진 것도 그렇다고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독서 논술수업을 하면서 책에 대한 흥미도 느끼고 책을 향한 그리움도 느끼면서 살고 있다. 또한 여행을 가거나 길거리를 다니면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물어왔을 때 거의 빠짐없이 대답해 주는 내 모습에 아이들은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것 정도다.
"우와, 우리 엄마 최고!"
초등학교 때 나랑 하루만 바꾸자 했던 아이가 대학을 다닐 무렵 중국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유명한 곳을 다니면서 온통 한자로 적힌 곳에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것을 알고 여행하는 것도 좋고 물론 그곳에서 번역기 써 가며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여행도 좋았지만 일단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불편했다고 했다. 수시로 사진을 찍어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바로바로 알려줬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제 하루와 엄마의 하루를 바꾸고 싶었던 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경복궁을 구경했을 때도 그랬다.
"엄마, 이건 무슨 글자야?"
"엄마, 이건 무슨 뜻이야?"
맞다. 충분히 모를 수 있다. 한자가 아이들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과목도 아니고 모르면 모르는 채로 살아가도 별 어려움 없으니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도 수학 과학은 모르는 채 살아가도 생활에 불편하거나 지장은 없다. 다만 조금 더 깊이 알면 굉장히 질 좋은 생활을 누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할까.
자꾸만 물어오는 아이의 질문에 한편으로 웃다가도 한편으로 이것도 몰라? 식이 될 때가 있다. 그때는 혼자만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