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관심사를 읽으며

나도 성장한다

by 어린왕자



초등 저학년부터 고등까지 수업을 하다 보면 실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평균적인 학년의 지능을 따라가는 아이를 '보통'이라 한다면 보통 이하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때가 많다. 특히 독서 수업은 보통의 아이들도 어렵다 생각하고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선정할 때도 조금 쉬운 책을 골라 읽어야 책을 읽어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을 읽어내긴 하지만 사실적인 이해를 못 하는 아이들도 많다. 읽기가 되지 않는 아이들도 많아 사실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추론도 어렵고 주제를 파악하는 데도 힘들어한다.



나의 크나큰 실수를 깨달은 건 그 아이를 만나고부터였다. 지금 그 아이는 서른을 훌쩍 넘겼겠다. 그 아이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나 중3 때까지 수업을 했으니 긴 시간을 서로 쫓고 쫓기듯 엉켜 붙으며 눈알을 굴렸었다. 아이가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게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도 '선생'을 대하는 아이는 좀 달라질 거라 여기셨는지 거의 맡기다시피 하셨다. 책을 읽어오는 것을 힘들어했고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선생이 다가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교재를 펴 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결국엔 책을 읽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만 오갔고 엄마의 처지를 네가 조금 알아야 한다는 도움 되지 않는 속사정만 내비쳤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은 나도 초보였다.



오기가 생겼다. 쉽게 말하면 네가 그리 해 봐라, 내가 눈 하나 꿈쩍 하나? 그거였다. 어찌 됐든 하루 필요한 양을 해내려 몸부림쳤고 아이가 듣든 듣지 않든 혼자만 중얼거릴 뿐 참 효율성 떨어지는 수업이 지속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스스로 깨달았다.



하루는 책을 덮고 아이와 진지하게 개인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었고 여자 친구가 있는지를 물었고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냐는 연애 이야기를 주로 던졌다. 그랬더니 아이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너는 잘 생긴 얼굴이라 여자 친구들이 먼저 사귀자고 그러겠다 하면, 네, 짧게 대답은 하지만 분명 생기가 있었다. 그래, 너는 너의 이야기를 같이 할 친구가 필요했고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구나! 좋아. 오늘은 네 연애 이야기를 해 보렴! 그렇게 해서 하루 수업을 마쳤다. 아이에게는 어머니한테 비밀로 하자고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책도 조금씩 읽혀 보겠다는 야심 찬 다짐도 덧붙였다. 연애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몇 번을 지속하면 재미가 없다.


아이와의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을 할까 엄청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 진도와 관련 있는 교과서를 위주로 한 책 읽기를 시도했고 스스로 아이에게 자신의 느낌을 적어보게 했다. 책을 한 권 골라 일주일에 읽는다는 건 무리였다. 다른 방법으로 아이에게 책 읽기를 시도했던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내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았다. 독서 수업을 한다는 자체가 불만이었다.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또다시 입을 닫아버리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관심사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운동 이야기도 해 보았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도 해 보았고 여행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오래도록 길게 끌 수 있는 관심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내가 숙제 아닌 숙제를 해야 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있을 때 엄마가 집으로 들어왔던가 보다. 자기 엄마가 들어왔을 때도 아이는 물론 인기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곧 나를 맞으셨고 나는 아이가 수업 시간을 알고 있으니 곧 올 것이라 여기고 조금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지나고 아이는 가타부타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도 안 받는다고만 했다. 어머니와 식탁 의자에 앉아 아이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기 방 베란다 화분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이고야, 너는 이제 들켰구나!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어머니에겐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아이가 숨어 있는 걸 말한다면 이 어색함과 이 민망함과 이 불편함을 아이도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쭈그리고 앉아 선생이 가길 기다렸던 아이는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한 시간을 넘게 숨어 있는 것도 이상한 짓이건만 그걸 보고도 이상하리만치 동요가 일지 않은 나도 이상했다. 아이의 그런 행동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서 이 수업을 이어가야 하나 깊은 고민이 들었다. 아이의 앞날에 나의 이 수업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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