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도 있었다

백분의 일 확률로

by 어린왕자


하루는 아파트 현관에 전단지를 붙였다. 나름 고급스러운 아파트에는 함부로 전단지를 붙이지 못하게 했다. 아파트 관리소에 승인을 받아 일주일에 얼마의 대금을 지불해야 했고 전단지도 일일이 라인별로 스스로 붙여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선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혼자 하기엔 외롭고 고독스러웠다. 한겨울엔 춥고 한여름이면 죽을 것 같아 되도록 붙이진 않지만 광고는 쉬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 전화가 올지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다 운수가 좋은 날이 분명 온다고 믿었다.



정말 그날은 운이 좋았다. 몇 라인을 붙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꽤 이름 있는 아파트라 세대수가 많았던 건 확실하다. 여느 때처럼 별 기대 없이 전단지를 붙였고 늦은 저녁까지 수업을 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가며 또 다른 아파트를 찾아 전단지 붙이기를 물색 중이었다. 삶이 쉬운 건 없었다. 승인을 받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했고 내가 원하는 아파트라 해도 백 프로 허락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웬만한 아파트는 모두 승인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장을 붙여도 전화 한 통만이라도 걸려오길 간절히 바라던 시기였다.



그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단 번호가 뜨면 심장도 같이 뛰었다. 지금은 핸드폰 번호라도 모르는 전화는 함부로 받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스미싱도 별 없었고 스팸문자도 별 없었던 시기라 당연 수업에 관한 문의일 거라 여긴 번호였다. 반가움에 받아 든 전화는 분명 반가움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설명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상대의 얘기를 들었다. 입가에서 눈빛에서 흐르는 미소는 진정이 되지 않을 만큼 흥분되어 있었다. 마음은 단단했고 옆에서 나를 보는 아이들도 웃고 있었다. 우리 엄마, 열심이구나. 열심을 알아주었구나 그리 생각한다 여겼다.


백분의 일 확률을 뚫고 그날 전단지를 붙인 곳에서 그날 바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이러면 이건 거의 성공 아닌가? 할 만했다. 어디선들 못 부칠까? 이렇게만 된다면 쉬운 사업이다 싶었다. 아니, 이런 날도 있어야 희망이 있지 않을까 위로를 받았다. 아이들의 잡담을 피해 상담 문의 전화를 끝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아싸, 이거야! 그래 그 쾌감을 누리려 전단지를 붙이고 기다리는 전화를 받고 돈을 들이나 보다 했다. 정말이지 이런 행운이 오리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아이가 중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내게 논술 수업을 받았으니 꽤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집에서 하는 수업은 팀으로 만들기 쉬웠지만 외부에서 문의가 오는 상담은 온전한 팀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물론 팀으로 수업을 하면 효율적이지만 원하는 대로 되기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 아이의 친구가 합류해 둘이서 수업을 했다. 똑똑했던 아이들이라 둘이서 해도 여럿이 하는 효과를 봐서 만족했던 수업이었다.


지금은 아마 그 아이가 결혼을 했을 수도 있는 나이에 이르렀다. 거리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때 그 아이로 인해 고마웠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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