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제에 눈雪물처럼 비가 내렸어요

막걸리만 보면 먹고 싶다

by 어린왕자

버지 가신 날 눈이 내렸지요

하얀 눈이 소복하게 눈雪물처럼 내렸지요

막걸리 한 병 가슴팍에 차고 오시다가

눈雪길에 행여 미끄러질까

찾아오시는 길 어둡지 않게 일찍이

해마다 엄마는 대문을 열어두었지요

당신 손이 마지막으로 스친 곳에

오늘은 주룩주룩 굵은 빗물이 닿네요

억겁의 세월을 밟고 선 언 땅 위에

그때 울지 못했던 설움이 눈물처럼 쏟아지나 봅니다.


울지 마라고, 뱃속의 아기가 섧워한다고

하얀 눈을 밟고 선 이웃의 아낙이

눈물을 훔치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그래도 웃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래야 살아진다고,

그때 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죠.


넋 놓아 분주히 이승과 저승을 오갔던 엄마는

언 땅 위에 선 남은 자들을 위해 소고깃국을 끓이셨지요

당신이 돌아가야 할 길 위 눈꽃을 뿌리기 위해

상여 매야 할 장정들을 위해

엄마의 넋은 있다가도 없으셨지요.

소리 없는 총으로도 어쩌지 못한 살붙이였지만

귀신은 저 인간 안 물어가고 뭐 하냐 때론 타박하셨지만

산 자를 위해 대문 고치던 모습이 아련해

그렇게 아프다 말 한마디 안 하고 가신 게 서러워

하얀 눈에 엎어져 어찌 살까 하셨지요.


좋은 세상 누리지 못하고

질펀한 진흙길만 걸으셨던 당신의 길

뜬눈으로 결국 보지 못한 그 꽃길을 밟으시라

감은 눈 아래 고요히 뿌려드렸지요

섧워도 어쩔 수 없지요

당신 복이 그렇다 섧워하지 마라던 엄마는

누룩 내 풍기는 막걸리 한 병을 흔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을 삼키고 있네요

무거운 몸을 안고 꺼이꺼이 마음껏 울지도 못한

당신의 기일엔 하루 종일 눈雪처럼 비가 내리네요.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 준 그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어 해마다 당신이 계신 하늘가에 막걸리를 흩뿌립니다

눈雪물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 찾아오시는 길에

행여 빗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듬직한 아이 하나가

막걸리 한 병 사 들고 마중 갑니다


#막걸리#기제#그때는상여를타고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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