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면 은행이 어마무시 달렸다

가을 전령사

by 어린왕자



가을 한낮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끄떡 않고
가지 끝에 대롱대롱 달렸다
은행은 그렇게 목숨을 건졌다
땅에 떨어진 은행도
오늘은 밟히지 않는다
다행이다 간밤 바람이 불어
은행잎을 떨궈내고 하늘 향해 선 채
기나긴 생명줄을 지탱했다

가을 냄새가 난다
역겹도록 찐한 가을 냄새가 오히려 정겹다
잠시 가을이 지나면 맡지 못할 그리움인데
꾸린내 나는 은행이라도 외면할 수 없다
소리 지르고 감탄하다
돌아서면 끝나고 마는 가을
떨어져 뒹구는 은행잎에만 시선을 주고
대롱대롱 매달린 가지 끝 은행은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

파란 하늘이 궁금해
올려다본 하늘 끝에
무심한 듯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
툭 떨어져 소리쳐도
온통 은행잎에만 시선이 머문다

언제쯤 떨어져 생명을 다할 줄 알지만
그래도 간밤 매서운 가을바람에도
좀 더 여유로이 즐길 수 있는
그만의 자유가 생겼다

그도 알고 보면
가을의 전령사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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