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매'란 게 있다. 빨갛고 동그란 앵두 같이 생겨서 알 세 개 달린 뱃지를 학교에서 직장에서 나눠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연말이 가까워지고 날이 추워지면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마치 유니폼처럼 정장 깃에 하나씩 달고 등장하는 모금 방송의 풍경이 익숙하다. 올 연말에도 광화문 광장에는 100도를 넘기길 기대하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질 것이다. 이를 관장하는 나라에서 정한 법인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라 기부의 질이 좌우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랑의 열매 기부액이 1억 원을 넘는 고액 기부자에게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타이틀이 주어진다. 수년 전 여기에 가입한 적이 있다. 비록 약정이지만 넉넉해서 나눔이 아니라 나누기에 넉넉하다는 믿음을 스스로 다짐하는 행위였다. 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아너 회원의 날 행사를 연다고 초청장이 왔다. 기부문화의 최전선에 어떤 분들이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여 63빌딩을 찾았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모인 아너 회원들이 그랜드볼룸을 가득 채웠다.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행사라 그동안의 사업 개괄 및 인사말, 그리고 새로운 비전 공개가 있었다. 규모의 경제가 이 분야에도 적용되는 듯, 한데 모인 고액 기부자들 중에서도 10억 이상 초고액 기부자에게 오플러스라는 새로운 상위 타이틀이 부여됐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읽은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 심상이 강렬해 사랑의 열매란 아마도 산수유 열매일 거라 무의식 중 여겼는데, 그것이 영어로 오플러스(opulus), 백당나무 열매라는 것도 비로소 알았다.
각 8명씩 나누어 앉은 테이블이 50여 개는 되었으니 400여 분은 참석했던 것 같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도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 앉아 계셨다. 처음엔 서로 멋쩍어 앞만 보다 옆자리 부부 회원님 기념사진을 찍어드리면서 조금씩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인천 사신다는 한 사장님이 자기소개를 하셨다.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데 다른 손들은 어떤 손들이 있나 보러 왔습니다."
오른쪽 어머님께서는 기부금 용처를 작고한 부친의 모교 장학금으로 특정했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람은 있는데, 학생이 어디서 나온 돈인지 모르고 당연한 듯 받아만 갈 땐 가끔 서운도 해요."
왼쪽에 앉으신 70대 어르신은 일찍이 은퇴하고 기부를 시작한 지 십 년 되셨댔다. 내 회원번호가 이천 칠백 몇 번인데 당신은 백 번대라 하시니 오랜 기간 많은 금액을 기부해 오신 것이다. 어르신이 그러셨다.
"돈은 가까운 데서부터 줘야 해. 아무리 기부를 많이 하고 좋은 일로 상을 받아도 먼 데만 신경 쓰면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욕해."
세 분의 이야기는 별개였지만 상통하는 심상이 있었다. 순수하게 발동된, 성선설에 가까운,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그걸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힘이 빠진다는 것. 보상을 바라진 않지만 보람을 느낀다는 건 내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흔히들 얘기하는 '선한 영향력'이란 '선'할 뿐 아니라 '영향력'을 인정받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결국 어떤 힘을 끼치길 의도한다. 그 의도가 선하다는 게 중요한 점이지만 어쨌든 원인만 제공하고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善'함은 '영향力'의 필요조건이긴 하나 그 자체로 충분조건이 되진 않는다.
선과 힘의 상관함수는 조금은 냉철하게 따져볼 만한 주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왜인지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마음이 갔다.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인사를 건넸고, 길에 떨어져 다친 새 새끼 같은 것들도 툭하면 주워 와서 처치곤란이 되곤 했다. 덕분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급우들의 사정을 선생님보다 잘 아는 반장이 되었고, 집 앞 화단 작은 동물들의 무덤은 어린 내게 죽음을 가까이 가르쳐준 배움터가 되었다. 나 자신은 강자도 약자도 아니었지만 같은 일이라면 강자의 권리보다 약자에 대한 책임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깊이 배었다. 일종의 맏이 콤플렉스 같은 것도 작용했던 것 같다. 보다 수월한 삶을 위해선 그런 쓸데없는 책임감 대신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버릇 해야 한단 걸 진작 알았더라면 혹 지금의 삶이 더 윤택해졌을까?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예전엔 지하철 역사 계단에, 운행 중인 객차 안에서도 걸인들 특히 맹인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를 대비해서 주머니에 동전 몇 개를 꼭 지니고 다니다 쨍그랑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떨궈넣곤 했다. 대학 입학하던 해 생일엔 첫 헌혈을 했다. 태어나졌을 뿐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내가 축하받을 게 아니라 세상에 난 이유를 되새기는 날이 돼야 한단 생각에 매년 생일 헌혈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은 혈액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수십 년간 나만의 의식으로 계속됐다. 군 입대 전엔 각막 기증을 서약했다. 제대 후엔 다른 장기도 마저 서약했다. 경제적인 여유는 없어도 내세울 몸은 있던 때였다. 이런 사실을 아는 친구들은 없었다. 딱히 내 얘기를 늘어놓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구호단체를 통해 해외아동 후원을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친자식은 없는 아쉬움을 다양한 국적의 아동들이 성장하고 졸업하는 것을 릴레이로 응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뉴스에서 이런저런 재난 소식이 들릴 때면 모른 척 가만히 있기가 쉽지 않았다. 호주 산불 때도, 미얀마 쿠데타 때도, 터키-시리아 지진 때도 비공식적인 루트를 찾아서라도 얼마씩 지원금을 보냈다. 유네스코에, 유엔난민기구에, 생명다양성재단에, 세상이 나아지는 데 뭐라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하고 바랐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땐 내 몫으로 나온 재난지원금에 백만 원 정도를 더 보태 거주하던 단지 경비/미화 아버님 어머님 십여분을 위한 감사금을 준비했다. 의료진에게 엄지를 추켜세운 #덕분에 챌린지가 SNS에서 유행하고 모 아파트 주민에게 갑질당한 경비원의 안타까운 사고가 인터넷을 달구던 시절이었다. 관리소에 익명으로 대신 전달을 부탁했는데 이튿날 저녁뉴스에 난데없이 "얼굴 없는 기부천사"라고 나오는 걸 보고 잠옷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관리소장님 입장에선 좋은 홍보거리라도 되었는지 언론사에 제보를 하셨던 모양이다. 팔자에도 없는 기부천사가 되고 나니 그게 나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웃픈 홍길동 같은 상황이 됐다. 관리소 앞 CCTV에 어렴풋이 실루엣만 잡힌 얼굴 없는 천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지금도 몇 없다.
이런 일들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드러내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왼손이고 오른발이고 간에 티를 내는 순간 위선이 되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아마도 나란 사람을 안다고 자신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구태여 알아줄 길도 없는 노릇이다. 이 글 전까지는 말이다.
먼 데만 도우면 가까운 데서 욕을 먹는다는 세 번째 어르신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선행들은 그다지 실속이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라고 주변에 무심했겠는가. 경조사 챙기고 막내들 용돈 주고. 하지만 선물 좀 받았다고 그걸 두고두고 고마워하거나 보답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 무심한데, 가십 말고 타인의 선행에 대해서는 특히나 더 무관심하다. 이 진리를 안다면 고마움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하수의 사고방식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오히려 이런 행동은 나 좋자고 하는 행동에 가깝다. 그렇다고 맘 한구석 그래도 알아주면 좋지 하는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건 필시 존재 의미에 대한 어떤 확인 같은 게 사람에겐 디폴트로 필요하기 때문일 게다.
아너 소사이어티 행사날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인지상정으로 느껴진 건 그런 포인트가 평소 생각과 맞닿았기 때문이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어도, 내 행동에 보람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 그 보람이란 게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다. 선의가, 선행이, 실제로 선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은 것. 기부문화가 빈약한 이 나라에서 나눔을 선도하는 리더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인간적 바람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베풂이 자칫 시혜가 되는 순간 어떤 교만보다도 강력한 우월감이 된다. 그 우월감을 보상 삼아 기부를 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형편이 되지 않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너 같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적선과, 현재 처한 상황에 감사하는 자선은 상당히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우리 범인(凡人)들이 자기만족 없이 일방적인 헌신만으로 자선을 행하긴 어렵다. 기부자들도 기부의 정신을 지속할 동기부여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위 수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이들의 선의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이 필요하다. 당신이 하고 있는 그 행동은 의미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키운다는 인정. 그런 방편 중 하나로서 아너 소사이어티가 기능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동기부여를 넘어 대상과 비교되는 능력치처럼 인식되는 건 좀 곤란하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면 낯선 타인에 대한 기부가 여전히 낯선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All that is not given is lost."
영화 <시티 오브 조이>에 나오는 말이다. 주지 않은 것은 곧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담긴 뜻은 단순하다. 처음부터 내 것인 건 없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다 내게 주어진 것일 뿐, 그렇게 혼자 열심히 움켜쥐다 끝나면 그냥 잃어버린 것과 진배없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 세상을 살면서 내 힘으로 벌고 쌓고 이룬 듯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나를 받아들인 사회로부터, 나보다 앞서 산 역사로부터, 그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존재시킨 어머니 자연으로부터 얻고 빌린 것이며, 언제라도 떠나는 날 도로 돌리고 돌아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빌린 것을 반납하는 것, 그처럼 당연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나 또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애쓰고 싶다. 이런 마음을 누가 알아준다면 고마운 노릇이고 몰라줘도 힘은 좀 빠질지언정 타고난 됨됨이가 달라질 일은 없다. 내가 빌려 쓰고 반납한 정신을 또 누군가 잘 빌려 쓰고 이자까지 붙여 반납한다면 그것이 곧 보람이요 아너이지 않을까?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한 마리 어린 짐승처럼 열이 들끓던 <성탄제>의 화자는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고서 불현듯 과거를 회상한다. 산수유 붉은 알알이 화자의 핏속에 남아 흐르고 있다니 눈밭을 헤쳐 갖은 고생을 다한 화자의 아버지로서는 보람된 결말인 듯하여 다행이다. 사랑의 열매도 어딘가 알알이 붉은 물결로 흐르고 있을지 알 순 없지만, 알 수 없다 해도, 이런 일을 이어온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버릇처럼 계속해서 이런 일을 이어갈 것이다. 때로는, 관성 자체가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므로. 공감하는 모든 당신들께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