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무게 - 돕는다는 것에 대하여
남을 돕는 일은 아이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성질은 어른이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란 단순하고 직관적인 행위이다. 교실에서 넘어진 친구를 양호실로 데려다주는 것, 그것은 자기 체구만 한 무게를 견디는 일이면서 동시에 위로해 줄 수 있는 이타적인 마음을 실천하는 일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복잡하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돕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돕는 것이다. 어린 시절 무릎이 까져서 울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었던 기억,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 함께해 준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다. 도움이란 풍요로움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니라, 부족함을 아는 사람의 공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어른들을 동경했다. 불우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와주는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에 감동했다. 작은 주삿바늘로 예방주사를 놓으면서도 “안 아프게 해 줄게”라고 말해주는 간호사 선생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동경했다. 그들의 일상은 봉사와 나눔의 연속이었고, 그런 삶을 보면서 나도 꿈을 키워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들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자신만의 고민과 걱정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그들의 선한 행위가 때로는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용기가 어떻게 하루하루 새롭게 다져져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어린 눈에는 그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상으로만 보였던 그들의 삶이, 사실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성인이 된 후로 나눔을 실천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경제적 여유의 문제만이 아니다. 음식을 많이 해서 이웃과 나누는 일조차 이제는 쉽지 않다. 누군가는 고마워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잘못 도왔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지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서로를 향한 선의가 의심받고,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되는 시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돕고 싶은 마음보다 조심해야 할 것들을 먼저 계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텔레비전에서 남을 돕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선의의 자아가 다시 꿈틀거린다. 화면 속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그런 날이면 주변에 도울 만한 일이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안부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오래가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현실적인 고민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하루에도 여러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선의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가도, 곧 내 안위를 걱정하게 되고, 내 가정을 먼저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 찰나의 헤아림 속에서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런 내적 갈등은 아마도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돕고 싶은 마음과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존경스러운 것이 꾸준히 남을 돕는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을 텐데, 어떻게 그런 망설임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 어떻게 매일 아침 일어나서 다시 남을 위한 일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들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일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내가 동경했던 어른들도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어린 나의 눈에는 그토록 빛나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어렵다. 완벽하지 않고, 일관되지도 못하다. 때로는 선한 의도를 품었다가도 현실 앞에서 주저하게 되고, 때로는 용기를 내어 행동했다가도 그 결과에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쯤 남을 돕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인 이상 망설임과 두려움은 늘 함께할 것이고, 완벽한 선의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섣불리 식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기도해 본다. 내 안의 선의가 세상의 차가움에 얼어붙지 않기를, 망설임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그리고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어쩌면 그런 기도 자체가 이미 선의의 시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