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생
깊어진 사랑은 감정보다 무거운 시간이다. 어린 시절의 사랑은 마치 한 움큼의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처마아래 웅크린 새끼 강아지처럼 작고 소중했다. 아름답게 꾸며진 동화 같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래시계처럼 쌓이고 버려지고를 반복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사람을 만날 때는 이런 조건을 봐야 하고 계산적인 체크리스트를 메워가다 보면 서서히 사랑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굳어져버린다. 밝고도 가슴 뜨거웠던 커플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시점에 마주하게 되는 필연적인 코스가 있다. 두 사람의 미래 계획과 각자 요구하는 기준 앞에 사랑이란 감정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진 향초처럼 뜨거웠던 촛농자국만 남게 되기도 한다. 마음은 무겁고 사랑이란 감정이 조금은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 또다시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조건 없는 사랑은 부모님 사랑 외에는 견줄만한 게 사실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랑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할 때 이분은 천사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에 단연 빠질 수 없는 것은 사랑과 희생정신이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은 좋지 않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생은 사랑이며 목숨을 주는 사랑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인가? 단연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참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한 사람은 그 사랑 앞에 헌신적이고도 자기를 모두 내려놓고야 만다. 죽음을 넘어서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혹은 고전 중에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종종 등장하는 애국열사의 나라를 사랑하여 한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모습에서 한 사람의 결의와 고백은 개인의 희생을 넘어서 존경과 감동을 불러올 만한 스토리가 된다.
작은 골목길 상점 유리창 가까이 진열대에 아기자기한 소품을 본 적 있다. 그 당시에 나는 무엇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발길 따라 들어선 작은 편집숍에서 너무 호감인 오르골 하나를 구매하였고 집에 오는 동안 연신 듣고 또 들었다. 맑은 오르골 소리가 황홀해서 듣고 또 듣고는 이내 집에 와서 책상 위칸에 중앙에 나름 정성 들여 잘 두었고 보고 또 봤지만 그날 이후 오르골 소리를 다시 듣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잊혀 갔다.
사랑이란 어쩌면 책장 한 귀퉁이 장식하고 있는 오르골처럼 첫 만남의 즐거움과 호기심은 이내 끝나고 만다. 호기심이 끝나면 사랑도 오르골처럼 잊힌다면 혹 이렇게 사랑이 쉬워진다면 이것은 과연 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헌신과 사랑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동전의 무게마다 그 값어치가 다르듯이 헌신의 무게만큼 사랑의 무게도 달라지고 그 사랑의 가치는 귀중헤지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를 의심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헌신이라는 관점에서 준비된 사람이지 스스로 가늠해 봐야 한다.
사랑은 초콜릿 몰드에 넣어 잘 포장된 모습이지만 진열대에 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기만족에만 갇혀있는 진열장 한편 순간의 사랑이지만 곧 없어질 감정이 되고야 만다. 하지만 희생의 가치를 함께 나눈 사랑은 내면에 깊이 내려가 자리를 잡게 되고 사랑하는 나의 누군가에게 각인된 도장처럼 삶에 깊은 자국과 무게가 생길 수 있다. 진짜 로맨티시스트는 희생을 할 준비를 마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