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자녀는 최고의 럭셔리
어린 시절 막연하게 결혼 후 나의 삶을 꿈꿔 본 적 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어린신부는 결혼 후의 삶을 아직 모르는 애송이였다. 명품의 이름도 생소하게 느끼던 그런 순수한 나이였다. 지금도 여전히 명품수집에는 정말이지 열의가 없다. 정말 좋아하는 한 두 개의 브랜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충분히 만족하게 가지고 있고 그마저도 아까워서 자주 사용하지 못한다. 성격적으로 부담스러움을 스스로 불편해하고 생활적인 부분도 늘 검소한 편이다. 하지만 화장품만큼은 백화점 유명브랜드를 사용한다. 이유는 고가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기초화장품은 좋은 것을 사용한다. 결혼 전 시부모님의 당부가 계셨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향수는 좋은 것을 사용하라는 말씀이셨다. 결혼 후 옷이며 신발이며 부족한 것이 없었다. 시어머님을 잘 만나서 친딸처럼 챙겨 주셨다. 선물도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자주 주셨다. 딸이 없으셨던 시부모님께 딸 같은 며느리가 되었고 어머님께 딸이자 친구이자 연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시댁에서 며느리의 시간보다 딸로 보낸 시간이 더 길다.
결혼할 때 예물로 받아서 열 번도 착용하지 않은 명품 시계는 가끔 착용하면 내가 시계를 소유한 게 아니라 시계가 나를 걸친 기분이 들었다. 아기를 안아줄 때나 살림할 때면 부담스러운 가격이 적잖게 신경 쓰였다. 손에 다이아반지를 착용한 들 내 손에는 늘 고무장갑이 필요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한 아기엄마에게 명품은 거추장스러울 뿐 시계며 반지는 점점 보관용이고 관상용이 되었다.
지금은 급할 것도 없고 뛰어다닐 일이 거의 없는 평화로운 삶이지만 어린아이들을 육아하던 나는 항상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특별한 날의 젊은 엄마는 손이 여섯 개 인 듯이 살았고 두 다리가 늘 종종거리며 여유롭지 못했다. 외출하는 동안만큼이라도 젊은 여자로 살고자 했던 그날은 어김없이 기대와는 반대로 지나가게 되었다. 하이힐로 도도하게 여유롭게 걷던 내 발걸음은 어느새 하이힐을 신을 것도 잊은 채 아이를 따라다니며 뛰는 것은 기본, 눈빛마저 생존모드로 변환된 상상과는 다른 사람처럼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내 세상은 온통 체험 삶의 현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앞치마와 양손의 고무장갑은 나의 하루 필수용품인 그런 생활이 되었다.
세 아이들이 모두 유년기였던 그 시절은 뒤돌아서서 눈물 나는 날도 많이 있었다. 집안일은 왜 도무지 끝이 없나? 늘 만성피로와 마음 편히 두 눈을 붙였던 그때는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기를 잘 돌봐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알람 없이 작은 소리에도 자동기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체력은 점점 달리는데 가끔씩 보이는 거울 속 비치는 저 모습은 진정 내 모습이 맞나?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이십 대 엄마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출근도 퇴근도 없는 아기 엄마이자 가정주부의 삶이다. 아기가 잠에 들면 관상용 반지를 꺼내어 보고 예쁜 옷도 한 번 입어보며 잠시동안 집안에서 뿐이지만 내 기분을 위해 애써본다. 이렇게 멋을 내며 잠깐의 만족을 채우다가도 어느새 달려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고 싶어진다. 서둘러 모두 제자리에 정리해 두고는 다시 편안하고 부드러운 옷으로 갈아입고 소중한 아이들을 살피러 가게 되었다. 보통의 이십 대 여자에서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던 그 시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신부에게 모든 것이 훈련으로 느껴졌다. 첫째를 낳고 이등병, 둘째 낳고서 상병, 셋째를 낳고 나니 말년 병장이 되어있었다. 군대는 전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규칙이 생겼고 단단해졌다는 의미에서 비유해 본다. 아이 셋을 키우며 육아 분야에서 나는 달인이 되었다. 십 년이 넘게 세 번의 출산과 육아과정은 매일이 도전이고 인내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적당히 웃어넘길 줄도 알게 되었고 특별하지 않은 작은 장난감, 색종이 하나만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충분히 즐겁게 놀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라고 했다. 또 거울이라고도 했다. 나의 결혼 목표 중에 하나였던 아이를 셋 낳아서 다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육아에 대하여 세세히 알지 못한 것이 어쩌면 묘약이었을까? 그래서 겁도 없이 용감하게 셋을 낳겠다고 처음부터 다짐했고 출산을 이어 갈 때마다 아이가 더 사랑스러웠다. 그 자체로 너무 소중했고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잘 자라게 해 주겠다는 마음의 약속이 큰 가치가 되었다.
자녀들이 가장 귀한 보물이고 내게 최고의 럭셔리라 생각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울었지만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오듯 다시금 일어서고 사랑으로 용감하게 하루의 육아전쟁을 맞이했다. 명품은 서랍에 넣어두고 이렇게 진짜 내 명품을 찾았다. 엄마에게 자녀는 그 자체로 귀하며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명품은 엄마이고 아빠이고 자녀들이다. 내 손위에 고무장갑은 어떤 명품보다 귀하고 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진정한 럭셔리는 물건이 아니라 가치라는 점이 내 마음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