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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신부

성숙해지는 과정

by 우리의 결혼생활

스물셋, 엄마가 되다 - 성장의 기록

화제의 중심이 된 결혼

스물셋. 나는 일찍 결혼한 덕에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일찍 결혼할 것 같은 친구’ 순위 1위였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소꿉놀이를 좋아했고, 또래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학교 임원을 맡았고, 고등학교 교내 합창부에서 발탁되어 애국조회 지휘까지 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은 너무나 즐거운 학창생활로 기억된다. 공부의 재미도 크게 느껴보고 마음껏 성취해 본 시기였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자랑하고 싶은 학창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순간을 하나 뽑으라면 고등학교 시절이다. 당시 한 학년에 오백여 명, 열 개가 넘는 반에 한 반당 사십 명씩이었다. 1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고 성적을 기다리는데, 학급담임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발표해 주셨다.

“반에서 1등, 전교 4등!”

나는 늘 상위권이었지만 반에서 1등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때는 달랐다. 전 과목 평균이 98점을 넘는 점수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수능 후 서울 상위권 법정계열 대학에 합격했지만, 뒤늦게 알고 다른 학교에 입학등록을 한 탓에 지금까지도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선택한 사회복지 전공분야를 위해 4년제 대학교에 진학했다.


학생의 마음으로 살아간 결혼생활

어쩌면 그때부터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결혼생활도 개인 공부처럼 자세와 성실함이 좋은 점수로 이어지듯 생활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학생의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했다. 이런 삶의 자세가 나를 조금은 힘들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성장시켰다.

결혼 후 삶의 변화는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고 즐거웠다. 신혼생활은 모든 변화가 즐거운 시간이다.


육아, 낯선 자율학습의 시작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삶의 변화가 더 이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전의 삶에서는 정해진 시간표가 있는 것 같았는데, 육아의 일정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표였다. 마치 낯선 분야의 자율학습 같았다.

떨어지는 체력만큼이나 심적인 우울감이 처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던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는 늘 참석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둘이 되고서부터는 자리를 비우기 어려워졌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수다를 즐길 여유도 사실 없었다. 다둥맘은 그렇다. 함께 하소연할 친구들은 대부분 아직 결혼도 안 한 사회 초년생들이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결혼은 개인의 삶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한 몸처럼, 삶 속 긴밀한 감정적 공감과 생각, 사소한 선택까지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는 일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 양가 부모님과 남편에게도 마음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시간표로 살았던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의 체력을 나를 위해 썼다면, 이제는 거의 전부를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다.

나를 돌볼 시간 없이 계속 에너지를 뿜어내다 보니, 어느새 허무함이 밀려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강남권 웨딩업체에 단 4명만 입사한 그 경력이 마치 전생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를 떠나온 어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혼자 견딘 외로운 시간들

그때가 외롭고 지쳤던 시기였는데, 나조차 내가 힘든 시간이라는 사실을 애써 지나쳐왔다. 어쩌면 어려움을 알고 싶지 않았다. 우울한 나를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약한 내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바쁜 남편에게 응석 부리는 철부지도 못 되었고, 지금 이렇게 힘들다고 표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어른아이처럼 자란 나에게는 부탁하는 일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더 바쁘게 움직여서 스스로 잊으려 했다.

말 못 하는 백일 갓 지난 아기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내가 무얼 힘들다 하고 있었나 싶을 만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기는 내 말을 이해해 주는 걸까?’

웃고 침을 흘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던가? 과연 그랬다.

아기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모성의 위대함을 느꼈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았다. 경험은 이론보다 강했다. 여러 날 울고 웃고 하다 보니 내 마음은 단단해졌고 견고해졌다.

힘들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것도 내 몫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도 나누고 정도 나누면서 조금씩 어려웠던 부분이 안정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막내가 4살, 큰아이가 8살, 둘째가 6살이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에 가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러려면 꼭 십 년이 필요한 셈이다.


하나님 안에서 찾은 무한한 사랑

언젠가는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내 성격이 미웠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하고 견디며 지혜를 얻었다. 내 약점이 강점이 되기 위한 노력과 기도는 내 삶의 호흡과 같았다.

성경을 보면서 지혜와 평안을 얻었다. 묵묵히 그 시간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무한한 사랑이 내 안에서 흐르고, 충전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모성은 자동으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모성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나의 낮아짐과 겸손함, 희생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진짜 사랑을 배웠다.

모성은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줄지라도 아쉽지 않은 사랑이었다. 내게는 정말 중요한 사랑의 법칙이 되었기에, 나를 양분 삼아 내 아이들이 잘 자라나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가정이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결실을 맺은 시간들

이제 큰아이는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현재 중학교 전교회장이며, 둘째 역시 초등학교 전교회장으로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셋째 역시 같은 초등학교 전교부회장으로 5학년이다.


감회가 새롭다.

나는 이곳 초등학교 지역위원이며, 학부모 대표로 중학교에서도 추천이 들어온다. 아이들로 인해 큰 위로를 받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이미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인내가 주는 가치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서 더 고된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내가 주는 그 가치를 깨달았다.

씨를 심고 물을 잘 주고도 14일을 기다리지 못하면, 싹이 나기 전에 다른 씨를 심거나 흙을 갈아엎어 버린다면 결과적으로 식물을 얻을 수 없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만사가 다 그런 것 같다.

비록 힘들어도 어느 시점을 인내하고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그 강인한 정신력이 어떠한 상황을 마주해도 처세를 잘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다.


육아, 자립을 향하여

정답 없는 육아지만, 그 선택의 차이는 확연하다고 생각한다.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하게 할 수도 있고, 의존적인 아이로 자라게 할 수도 있다. 엄마 치마폭을 빨리 나온 아이일수록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히 키우라’는 옛말이 있다. 지혜의 가치를 나는 존중한다.

자립이 육아의 종착점이라고 한다. 육아를 몇 살까지 할 것인지를 나는 정했다. 그 시점부터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부모를 떠나 자기의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야 하며,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때가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러한 교육을 일찍 정서적 성장이 되지 않은 아이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어른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부모가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고, 서서히 정서적 독립심이 길러지는 교육을 하고 싶다.


자기 삶에서 필요한 선택을 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은 안정적인 삶에서 가능하다. 부모의 말대로 순종적인 아이보다 아이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기본을 심어주는 교육이 된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든 안 좋은 선택이든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인생의 주도적인 주체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야 한다.


비가 온다고 피하지 말고, 넘어져도 훌훌 털고 다시 뛰어가기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스물셋 어린 엄마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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