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꿈도 열정도 꽃피울 때
꿈을 접어둔 선택
이십 대 초반, 꿈도 많고 열정도 컸던 나에게 인생의 갈림길이 찾아왔다. 결혼과 이른 출산. 뱃속의 아기를 위해 직장생활을 짧게 마무리해야 했다. 유산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의 말과 집안 어른들의 권유 앞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덕분에 태교에 집중할 수 있었고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뱃속의 아기와 교감하는 시간적 여유는 분명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청춘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끓어오를 때, 마음만으로는 위로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현실과 마주한 시간들, 매일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매일 다른 변수가 넘쳐나는 육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회생활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다림은 어느새 ‘한계’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었다. 꿈꿔온 커리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었고, 꿈도 열정도 가득했다. 더욱이 남편 혼자 애쓰는 모습을 보니 미안함마저 들었다. 남편은 “아니야, 집에서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역할도 중요하고,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니 육아에 전념해 달라”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엄마로서의 삶 그 외의 꿈도 있었다.
기회를 만들어가는 시간
현실적으로 어려웠지만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부모님께 세 아이를 부탁드리기에는 부담이 컸고, 아이들을 늦은 시간까지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돌봄 교실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늦은 오후가 되면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때를 기다렸다. 국공립어린이집 대기 순번을. 다자녀가구 1순위 덕분에 대기는 길지 않았다. 막내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꽃 피운 열정
집 근처에서 블록레고교실을 대여하여 파트타임 영어교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린이 놀이시설 한 교실을 임대해 5명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수가 크게 늘어 본격적으로 원서독서기반수업을 진행하며 분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유치부와 초등부를 대상으로 한 영어놀이수업은 영어스토리텔링부터 영어아트, 기초영문법까지 아우르며, 분기별 이벤트 수업까지 진행했다.
당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았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많이 만났고, 감사하게도 좋은 학부모님들과 함께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종종 그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보고 싶어진다.
학원은 집에서 10분, 아이들 유치원에서 5분 거리에 있어 최적의 조건이었다. 늘 소망하고 꿈꾸던 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커리어를 이룬 셈이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균형 잡기의 예술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늘 기뻤다. 학원에서 강의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안락한 돌봄을 제공하면서, 나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했다. 균형을 잡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정신적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책임감 때문이었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몸의 힘듦이나 두려움을 이겨냈다. 막연히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접고, 행동으로 움직여야 길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늦은 때란 없다
결혼 후 8년이 지나고서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후회 없이 도전하기로 했다. 늦은 때란 없었다. 내가 열심을 내니 환경도 나를 돕는 것 같았다. 설령 돕는 이가 없을지라도, 자신이라도 나를 믿어주고 동기부여한다면 모든 계획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도 무엇인가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육아맘의 경력이 육아로 인해 단절되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정이 있다면 충분하다.
어제의 꿈도, 열정도, 결국은 꽃피울 때가 있다. 그 씨앗을 가슴에 품고 잠시 기다고 때를 놓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머니들의 힘이 아닐까.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