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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사랑의 언어 세 번의 선택, 하나의 신념

by 우리의 결혼생활

세 딸을 모두 24개월간 완전모유로 키웠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는 이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그 여정은 때로는 험난했고, 때로는 숭고했으며,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했다.


처음 모유수유를 결심했을 때, 나는 어린 신부였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정작 모유수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분유가 더 편리하고 당연한 선택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다.’그 선물은 단순히 영양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신이 어머니에게 부여한 가장 원초적이며 생명 그 자체인 능력이었다. 자연분만을 고집했던 것처럼, 나는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내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모성애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같이 울고 웃는 이 수유의 시간 역시 갓 태어난 아이와 소통하며 이야기하는 순간이 되며 모성애가 싹 틔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을 점차 알아갔다.


마음과 뜻이 거창할지라도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아이 때는 젖이 부족해 분유로 보충해야 했고, 유선 마사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겨우 하루 식사량에 맞게 수유할 수 있었다. 아기가 살기 위한 몸부림을 찾는 것은 바로 수유할 때 찾아볼 수 있는데 젖을 빨아들이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엄마의 신체 일부인 가슴이 온통 휩쓸려 나가는 듯한 당혹스러움과 낯선 약간의 통증 속에서도, 생명의 젖줄이 흘러 아기의 뱃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짧은 순간의 신비로움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로서 경험할 수 있는 신비함을 넘어서는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의 순간이다.


아이가 조금 자란 후 가끔의 외출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 여섯 달이 지나면서 밖으로 나가야 할 일들이 생기는데 예방접종을 위해서만 아니라 여가차원에서 나들이 나가려 할 때면 시간마다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 일은 당연하고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곳을 찾게 되었다. 한 번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 속싸개를 뒤집어쓰고 벤치에서 아이에게 수유해야 했다. 당시 나에게는 넉넉지 않은 수유량으로 유축해서 담아 저장해 둘 엄두도 못 냈기 때문에 초보엄마는 몸이 고생스러웠다. 종종 수유실이 없는 곳에서 수유를 해야 할 때면 민망함에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이동하든지 수유하기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외출하는 날이면 아기 엄마의 의상은 자유롭지 못했다. 예쁜 옷과 액세서리는 수유에 방해가 되었고, 늘 수유하기 편한 옷을 입어야 했다. 한 번은 중요한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가 반나절 만에 옷의 앞면이 엉망이 되어 난감했던 적이 있다. 그때부터 여벌 옷은 필수품이 되었다. 하루 외출 짐이 3박 4일 여행 짐만큼 늘어나는 것도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시련을 넘어선 깨달음의 기쁨도 잠시 나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아기들의 첫 유치가 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수시로 깨무는 바람에 수유 중 피가 날 때도 있고, 수유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몸은 늘어지고 상처가 생겼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아이와의 2년을 약속한 특별한 정서적 유대시간, 그리고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면역력이라는 선물을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깊은 밤 졸음과 싸우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 보면, 문득 ‘어미 젖소’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눈물이 핑 돌며 깨달았다. 내가 저절로 큰 줄 알았는데, 어머니도 이런 희생과 사랑으로 나를 길러주셨구나. 지금 돌이켜보면, 모유수유는 단순한 육아 방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었고, 어머니가 되어가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수유 시간마다 나는 조금씩 더 인내하며 성숙해지는 고마운 시간이 되었고 비로소 어머니가 되어갔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나누었던 그 친밀한 순간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을 전해주었다는 뿌듯함이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세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준 지금, 그때의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모유수유를 했든 분유수유를 했든,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모유수유는 나에게 가장 큰 산이자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게 하루하루 복리로 쌓여가는 것이니까.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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