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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Apr 30. 2022

영웅인 듯 영웅 아닌 영웅 같은

[완독 일기 /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 황금가지

“어이구 저 화상, 귀신은 뭐하나, 저 화상 안 잡아가고”

요즘은 드물지만 예전에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대사다.

화상은 어떤 사람이 마땅치 않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읽는 동안 자꾸 이 대사가 생각났다.

히어로와 ‘어이구, 저 화상’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왜? 뭔가 어설픈 히어로 군상들이 주인공이니까.    

 

이 책은 8명의 작가가 쓴 슈퍼히어로 단편집이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슈퍼’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그걸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히어로들도 있다. 가진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벌어지는 웃픈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마치 코미디 빅리그에서 연기를 하다가 명령을 받고 출동하는 희극인 영웅들을 보는 것 같다. 명령을 받는 순간 무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히어로인 듯 히어로 아닌 히어로 같은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되겠다. 하지만 단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코미디가 갖고 있는 미덕은 웃음 속에 담긴 통찰력 아닌가.

표제작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는 이마에 고프로를 달고 날아다니며 자신의 활약상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히어로, 히어로 랭킹을 수시로 확인하며 순위에 연연하는 히어로, 라이벌 히어로의 랭킹을 떨어트리기 위해 별점 테러를 하는 히어로가 있다. 히어로로 살다가 인정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빌런이 되는 경우도 흔치 않게 일어난다. 이런 군상들이 모인 곳, 낯이 익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 다른가. 다만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나는 존재가 없을 뿐.


SF단편집임에도 이 책이 현실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한 명의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힘을 합치거나 교차시켜서 또는 일반인의 힘을 빌어서 문제를 해결한다. 순간이동 능력이 있는 인물(저격수)은 좌표를 잡아주는 동료(감적수)가 없으면 능력을 쓸 수 없다. 능력을 발휘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지상에 사뿐 내려앉고 그런 거 없다. 사방 벽에 머리 한 번씩은 박고 넘어져서 두어 번 굴러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심지어 술을 먹으면 괴력을 발휘해 개저씨들을 일망타진하는 여자와 그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남자 연인의 이야기도 있다.


킬킬거리며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DC, 마블 이런 거 잘 모르지만 그래도 히어로물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영웅을 좋아한다면? 2022년 5월 2일에 음반이 발매된다. 아, 이건 아닌가?

전국의 젊은이들을 대신해서 효도를 하고 있는데 우리 (임)영웅이보다 더 능력 있는 히어로가 있을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임)영웅님, 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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