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봄날의 꽃 같았던 친구를 떠나보내며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AI 이미지 생성
[AI 컷 만화]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어느 봄 날이었다.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친구를 만났다. 바람결에 흐르듯 나부끼는 원피스 차림의 여자아이가 뛰어왔다.
"안녕. 너 참 예쁘다."
첫마디부터 마음을 녹이듯 폭 하고 들어온 그녀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쉽사리 놓지 못한 채 그녀의 품 안 간격으로 들어갔다.
"넌 어디 지원하는 거야? 아나운서? 피디? 뭘 하고 싶은데? 나는 아나운서."
"..."
그녀의 말에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리는 교내 방송국 오디션을 보고 나서 헤어졌다. 방송국 오디션에 합격한 후 일주일 정도 극기 훈련 같은 모임에 참석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야 겨우 방송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인원이 도착할 때까지 벌을 받거나 주변 운동장을 뛰어야 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는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걸어야 방송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침 6시에 일어나야 선배들이 말한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문제는 공강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방송국에 무조건 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정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방송국에 가서 극기 훈련을 받고,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는 방송국에 앉아 있다가 아르바이트까지 가야 하는 생활을 오래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며칠 사이 이미 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방송국에 나가다 마음대로 그만두었다. 나를 눈여겨보던 선배가 있었는데, 그만둔다고 하자 몹시 화를 냈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을 연상케 하는 그녀와도 그렇게 헤어졌다. 우리의 시간이 스치듯 사라졌다고 생각할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한 수업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반가워. 너 나 기억해? 너 걔잖아. 예쁜 애. 아나운서 했어? 나는 며칠 나가다 그만뒀어. 너무 힘들더라고. 너무 반갑다."
언제나 그랬듯 친구라는 이름은 부끄럽고, 간지럽고, 두려우면서도 간절했다. 실습수업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하는 일들이 늘어났고,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집에 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가는 날이면 며칠에서 일주일은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그녀는 내가 집을 떠나는 것을 유난히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놓고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몇 시간이고 이어갔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열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나는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 질문들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기보다, 대답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불행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 이야기는 어느새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그녀를 구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네가 내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자라지 않았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공주처럼 살고 있는 사람 같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나는 그 무너짐을 이해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우리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친구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때까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우리가 친구였던 것이 아니라, 나는 그녀의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 있다.
"넌 나를 떠나도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거든."
그녀가 내게 상처를 줄 때면 나는 전화를 차단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게 일주일이 되기도 하고, 한 달이 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6개월이 지나기도 했다. 끊어진 것 같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관계였다. 어느 날 메시지 한 통이 들어왔다.
나 네가 믿는 하나님 믿어 보려고. 교회에 갔어. 알잖아. 나 신 같은 거 안 믿는 거. 근데 네가 믿으니까 믿어보려고.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 신을 믿는 사람이 나 하나도 아닌데, 왜 나는 그녀를 구할 수 있다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내가 왜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느꼈을까.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언제든 관계를 다시 시작했고, 나는 그 관계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로 묶였다 풀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녀가 사고를 칠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하는 친구. 그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가 친 사고를 몇 시간 동안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수습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친구라는 단어의 무게를 생각했다. 친구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걸까.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어야 친구라는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그녀에게 쉽게 내어주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관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치 끈끈이에 붙잡힌 쥐처럼.
20대 중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가 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사고였다. 사고 다음 날 나는 온 얼굴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어 원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그녀도 남자친구와 함께 병원에 왔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나를 위로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병원에서 나온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사고 이후 나는 두려움 때문에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살던 작은 원룸 방에는 방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서울 목사님이 보내주신 침대였다. 그 침대 위에 앉아 있던 그녀가 말했다.
"내가 왜 연락 안 한 줄 알아? 너한테 실망해서야. 넌 평소에 내가 가장 친한 친구랬잖아. 베스트 프렌드라고. 근데 병원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몰랐어. 너 나한테 거짓말했어. 너한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 나한테 너는 베스트인데. 너한테는 내가 아니라는 거잖아. 그래서 병원 다음 날부터 안 간 거야."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고로 나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네가 사고 나서 너한테 오히려 잘 된 거 아니야? 얼굴도 다 돌아왔고, 거기서 너 살도 빠져왔잖아. 그러니까 사고 났다고 너한테 마이너스된 게 하나도 없는데. 뭘 그렇게 유난이야. 나는 너 병원비 없을까 봐 아르바이트까지 하려고 면접도 봤다고."
그 말을 들으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왜 그녀가 내게 베스트 프렌드인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녀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에게도 내가 베스트라고. 그렇게 우리는 섞이지 않는 앙상블 같은 친구 관계를 이어갔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을 기억한다.
가장 소중했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믿었던 친우와 남편, 그리고 그녀가 함께한 날이었다. 닭갈비를 구우며 서로의 그릇에 익은 고기를 덜어주던 평범한 자리였다. 그날 나는 그녀와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사람들이 왜 삿대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그녀와의 인연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녀가 말했다.
"너, 진짜 제대로 설명해야 해. 너한테 내가 베스트가 아니었다는 거. 그때 내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아?"
"그 말을 왜 또 해. 그때 다 이야기 끝났잖아."
"너만 끝났지. 나는 아직 안 끝났어."
"너 내가 그날 죽었어도 이런 말 했을 거야?"
"응. 네가 죽었어도 장례식 가서 따졌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툭하고 내면에서 끊어졌다. 그녀 옆에 앉아있던 친우였던 오빠가 말했다.
"너 왜 평소에는 다 참다가 오늘따라 왜 그래. 너만 참으면 되잖아."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친우였던 오빠와도 관계를 끊었다. 그렇게 10년이 훨씬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남자친구였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걔가 서울에 왔어. 나 만나겠다고. 여자 소개해 준다고 지랑 똑같이 생긴 여자 하나 데리고 왔더라. 너랑 연락 끊었다며? 나랑 있는 내내 네 이야기만 하더라. 그렇게 너 좋아하는데 왜 다시 연락 안 해? 친구 그게 별 거냐. 그냥 다시 만나."
"뭐래. 미쳤네."
"걔가 돈 빌려달라고 하더라. 월세 낼 돈이 없다나 뭐라나. 적당히 밥 먹이고 놀아주다 보냈어."
"그렇게 괜찮으면 네가 만나면 되겠네."
"내가 왜?"
"그럼 나는 왜?"
말도 안 되는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게 자신의 어머니일 때도 있고, SNS를 통할 때도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는 내 삶에 다시 들어오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넌 결국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어. 장례식에서도 따졌을 거야.
결국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이사할 돈이 없던 시절,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나무 수레를 끌고 왔다. 그 수레에 내 책과 짐을 싣고 새 원룸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며칠 전 그때 그 수레에 실려 왔던 철학책들을 정리하다 그녀가 떠올랐다. 봄날의 꽃처럼 아름다웠던 그녀가 1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책과 함께 내 마음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무너졌다.
내가 너무 무정했던 걸까.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수많은 인연들이 함께 떠오른다. 외롭고, 슬프고, 고단하고, 아픈 시간 속에서 내 삶에 들어와 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감정이 남는다. 친구가 무엇일까.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마음이 물든다고. 내 아이가 있다면 그 사람과 닮기를 원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라고.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생각했다. 내 아이가 그녀를 닮기를 원하는가. 마음을 정했다. 나는 이제 그녀의 친구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그녀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SNS로 연락을 해 왔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12년은 훨씬 넘었는데도 그녀는 아직 그 끈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고마워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복잡한 감정이 지나갔다. 다행인 것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자리에 남편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일을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 목숨보다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사람을 나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너무 수치스럽고 불편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미워할 수 있는 관계는 얼마나 될까. 너무 사랑했지만 죽을 만큼 밉고, 그럼에도 함께 있고 싶었던 관계. 어쩌면 잘 유지했다면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나는 결국 끈끈이를 떼어내듯 빠져나왔다.
20대 중반의 사고는 내 삶의 많은 관계를 정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던 착한 아이의 가면도 벗겨졌다. 이제 나는 사람을 볼 때 고운 말만 믿지 않는다. 직감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미 고장 난 안테나가 나를 다시 비슷한 사람에게 끌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오래 관찰한다. 상대가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만큼 내 경계도 존중하는 사람인지도 본다.
이제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 속에 나를 두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내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다른 대상을 찾아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그녀가 나를 특별하게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쉬운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사기꾼이 가장 좋아할 만한 사람. 착하고 죄책감이 많고 공격을 되돌려주지 못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은 이곳에 없다.
이렇게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봄날의 그녀만이 아니라, 내 삶을 지나간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 사람들이 남긴 은덕 덕분에 나는 앞으로의 삶을 내 것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내가 화를 낼 때 가장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 반응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나의 감정을 배터리처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선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싶어서 그 관계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 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라는 이름의 스승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봄날의 꽃은 여름이 되면 떨어지고, 다시 새싹이 돋는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한다. 그녀의 삶도 새로운 계절을 향해 가고 있기를. 나는 그렇게 마음대로 기도해 본다. 예전처럼 그녀를 구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각자가 살아가게 해 달라고. 내가 이제야 내 삶을 걸어가듯, 그녀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그녀를 내 삶에서 떠나보낸다. 봄날 꽃이 지듯, 스무 살의 봄에 머물러 있던 기억도 함께 흘려보낸다.
봄은 그렇게 오래 지나서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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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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