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나를 돕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이유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나를 돕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이유
주말 동안 잠을 위주로 쉬는 중인 남편을 보면서 마음이 애잔하다.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만의 고충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혀 안쪽에 염증이 생겨 아파하는 남편을 보며, 이번 주말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그래도 주말인데 어딘가 가고 싶지 않냐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주에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보자고.
필요할 것 같은 영양제들을 챙기고, 4시간마다 비타민 C를 먹게 했다. 쉬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배고플 것 같은 시간에 맞춰 남편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오랜 시간 공부하고, 그 시간을 이어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에게 다음이 있으려면 지금 충분히 쉬고,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이 와도 살아낼 수 없고, 기회가 와도 붙잡을 수 없다.
남편이 종종 내게 말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하게 되니까 무리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어. 내가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맡게 되면 왠지 미안해서 힘들어.”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눈앞에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해 나가면 돼.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함께 의논하면 돼. 무리해서 일을 맡으면 그 순간은 모두가 편할 순 있겠지. 문제는 건강을 잃고 마음이 부러지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거야. 중간중간 잘 쉬어야 오래 일할 수 있어. 무리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결국 더 큰 공백이 생기고, 그 부담은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거든. 그러니까 가장 먼저 자신을 챙기는 게 결국 모두를 돕는 일이 되는 거야.”
나 역시 과거에는 내가 모든 일을 맡으면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 맡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면 눈치를 보다가 내가 떠맡았다. 내가 조금 더 움직이고 손해를 보면 사람들이 화평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의 뒤에는 항상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있었다. 희생을 통한 사랑.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의 전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 속에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내게 맡기며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일흔 일곱 번 용서하라,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내어주라, 부모에게 효도해야 복을 받는다. 그 말들은 내 마음에 죄책감을 남겼고, 그 죄책감을 통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착취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선한 행동을 할 때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 같았다. 이 땅에 아무것도 없어도, 좋은 행동을 할 때마다 천국에 있는 내 삶에 무언가가 쌓이고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나를 지탱했다. 기둥이 하나 생기고, 꽃이 피고, 소파가 놓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오늘 그 시간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그때 나를 먼저 챙기면서 타인을 돌봤다면, 다시는 그 타인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반복적으로 구부러진 마음과 몸은 결국 나를 부러뜨렸다. 지금은 같은 공간에 있거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끓어오른다. 마음이 내색하지 않으면 몸이 대신 반응한다. 이유 없이 아프거나, 혈관이 터져 멍이 생긴다. 온몸에 멍이 십여 개 넘게 생겼을 때, 나는 내가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거의 경험 덕분에 나는 남편이 힘들어 보이기 전에 먼저 쉬게 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알기 때문에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남편에게 집에서든 밖에서든 가장 먼저 자신을 챙기라고 말한다. 내가 집의 일을 전적으로 맡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남편이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성장할 때마다 고통이 아니라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충분히 쉬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힘이 생긴다.
새벽에 일어나 밀린 세탁을 하고, 이불을 빨고,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을 정리하고, 창고를 정리했다. 그리고 차 한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쌀을 씻어 담가 두었으니 낮에는 고운 밥을 해서 함께 먹어야겠다. 잘 자고 있는 남편에게 막 세탁해서 따뜻함을 가득 품은 부드러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표정이 평온하다. 자고 있는 모습만 봐도 이렇게 예쁜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남편과 닮은 아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이제 충분히 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이 잘 쉴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남편 역시 내가 쉴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로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에게 고운 말과 삶을 건네는 하루들.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어려움을 지나온 시간 덕분에 우리 사이에는 전우애 같은 단단함도 생겼다.
나는 요즘 남편을 더 사랑하려면, 내가 먼저 괜찮아야 한다는 것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충분히 쉬고, 잘 먹고, 잘 자야 고운 말을 할 수 있고,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사랑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돌본다. 잘 재우고, 잘 먹이고, 잘 씻기고, 편안한 옷을 입히며 나를 살핀다.
나를 잘 챙기는 삶은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책임이기도 하다. 내가 무너지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돕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주말을 곱게 채워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 호흡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오늘의 나를 조용히 끌어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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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