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3부 2. (4) 혈연

3부 2.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by 김희경 작가



3부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AI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유대로 맺어진 관계는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머물고 싶고 머물 수 있는 관계다. 나는 가족을 나를 소모하게 만드는 혈연의 이름이 아니라,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서울 엄마와 유대로 맺어졌던 것처럼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아름답게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은 소속감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반드시 연결된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꼭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일 필요는 없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를 조금만 넓혀 보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연결 속에 놓여 있다. 몇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도 모두가 친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얽혀 있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말은 피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혈연이라는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진실한 마음을 나눈다면 얼마든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을 쓰며 혈연이 아니라 유대와 진실한 마음으로 이어진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가족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은 종종 두 가지 오류에 빠져 흔들린다. 이제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을 닫거나, 이번에는 완벽한 가족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완벽한 가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데도, 그 환상에 갇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관계를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예상대로 반응해야 하는 구조처럼 다루려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통제의 기대가 그 바탕에 있었다. 통제를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한다.


그러나 가족은 결핍을 완전히 채워 줄 존재도 아니고, 나를 구원해 줄 존재도 아니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완벽한 가족이라는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서로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며 함께 머물 수 있다. 선택 가족은 서로의 결핍을 대신 채워주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을 책임지는 상태에서 연결되는 관계다. 낳아 주신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고, 안타깝지만 자신이 낳았기 때문에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으로 학대를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족을 이루더라도 상처와 고통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지워 버린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가정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이 장을 쓰는 동안 많이 울었고 판단과 죄책감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를 악마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나 역시 그렇다. 게다가 나는 선한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이 양날의 칼이 되어 내게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돌아왔다. 이 장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고, 속상하고, 아팠다. 무겁고 불편했던 이유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혹시나 가지게 될지 모르는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연결을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다가오는 관계 앞에서 선을 긋고, 숨고, 흔들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가만히 있어도 내면의 에너지가 닳아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안부를 묻는 문장 하나에도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장을 어떻게 닫아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선택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장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떠오른 기억이 있다. 20대 중반, 살인 미수사건 피해를 겪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시기였다. 서울 엄마는 내게 잠시 올라와 함께 지내자고 했다. 그 말 하나로 나는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지금도 나 자신보다 내 마음과 몸을 걱정해 주시던 유일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서울 엄마는 남편분과 함께 하시던 사업을 도움을 줬던 상대에게 넘기셨다. 그 사업은 엄마가 거의 반평생 키워 오신 것이었다. 선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어 손을 내밀었던 상대에게 사실상 빼앗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에서 사업을 접으셨다. 참 안타깝지만 내가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상대방을 도와준다고 해도 의도와 달리 사람을 잘못 선택하면 내 인생이 굽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엄마는 다 하나님 뜻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목회를 시작하셨다. 어차피 목회를 시작하면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말이다.


엄마는 오랜 시간 쌓아온 사업을 내려놓고 목회를 시작하셨다. 서울의 한 지하 교회였다. 그 공간은 지하였지만 엄마의 분위기와 향기가 풍겨나는 곳이었다. 밤이면 강대상 앞 붉은 카펫 위에 이불을 펴고 함께 기도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이면 예배가 시작되기 전 일어나 예배에 참석하거나 방에 들어가 마저 잠을 잤다. 시작과 끝을 매일 교회에서 보내는 것이 내게 많은 치유와 안정감을 줬다. 낮에는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돌아와서는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싱싱한 냄새가 나는 푸른 잎이 가득 든 봉지를 들고 교회로 돌아올 때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나로 충분히 존재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냥 있어도 되는 자리, 존재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것이 가족이라는 감각을 내 안에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다. 가끔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내 손을 잡고 청계천 중고 책 서점에서 책을 백 여권 이상 사주셨다. 중고 책으로 10만원 어치를 사면 금세 100여 권이 된다. 이때 철학서를 많이 읽었다. 나는 그곳에서 목사님 서재에 있는 책과 엄마가 사주신 책들을 읽으면서 고통스러웠을 시간을 치유의 시간으로 보냈다.


거의 15년 전이지만 아직도 그 날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 헤매던 때여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돌아보니 오직 책과 기도 속에 머물렀던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것도 갖지 못했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엄마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공간을 비워주시고, 채워주셨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가족은 형태가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기억, 사랑받았던 온기, 부담 없이 머물 수 있었던 시간. 그것이 내 안에 남아 힘들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 날들을 생각할 때마다 유대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줬음에도 그 무엇도 돌려받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직 내가 하나님 안에서 잘 되고, 세상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온전히 삶을 통해 이뤄나가길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너무 힘들어서 걸어갈 수 있는 힘조차 없을 때 엄마의 말들이 내 마음에서 살아숨쉬곤 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과 기도는 내 안에 가족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천천히 깨닫게 했다.


몇 달 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통화를 하자고 메세지를 보내 오셨는데, 나는 엄마에게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다음에 하자고 했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하셨고, 그냥 마음이 우울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대화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에 오히려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얼마나 곱던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자신을 더 잘 챙기시라고 말한 후 다음을 기약했다.


선택 가족 역시 연락이 끊길 수도 있고 서로의 존재를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곁에 있지 않더라도, 연락을 매일 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공간 속에 고운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는 가족일 수 있다. 엄마가 마음으로 낳았다고 말하는 아이, 그게 얼마나 가슴 깊은 곳을 절절하게 만드는지 가끔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베개를 가득 적신다.


가끔 고부갈등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 다큐를 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동상이몽이라고 할까. 각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듯 하지만, 한편으론 생각의 시작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시어머니는 딸이 생겨서 딸처럼 대한다고 말하면서 노예처럼 부린다. 새로운 가족의 이름만 딸이고 노예로 들어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갖은 타박에도 대꾸하나 못하고 일개미처럼 일만 한다. 못하는 게 뭐 그리 많냐고 하루 내내 타박하다 단 한번 칭찬에 눈물을 흘릴 만큼 착한 며느리들이 나온다. 그걸 볼 때마다 속이 타고, 화가 어찌나 나는지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딸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종종 들었지만, 내가 들어간 곳의 딸 자리는 콩쥐보다 더 아래 단계의 사람이었다. 가끔 칭찬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 칭찬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70살 넘은 며느리가 90살 넘은 시어머니께 갖은 욕을 들으면서도 하루 내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걸 보면서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든다고 해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이라는 건 자신이 바뀌고자 해도 바뀔까 말까인데, 모욕과 구박을 모두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뀔 필요가 있겠는가. 거기에 시어머니의 편까지 드는 남편과 어떤 상황에서든지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여성이 며느리가 됐다면 어느 한쪽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끝이 날 것이다.


만약 딸 같은 며느리로 받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딸이 생긴 행운을 거머쥔 엄마가 된다면 어떤 상황이 그려질까. 말만 딸이지 노예처럼 부리는 시어머니와 달리 시어머니에겐 진짜 고운 딸이 생길 것이고 며느리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사랑 많은 딸이 될 것이다. 서로 더 많이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주지 못해서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관계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만들어지겠는가. 이걸 나는 선택 가족, 선택 친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주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고,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주려는 모습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관계라면 나 역시 얼마든지 노예처럼 부려지더라도 딸이 될 의향이 있다.


지금에 와서 과거를 하나 하나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선택한, 선택하려고 했던 관계들이 어린 시절에 함께 지낸 강제 가족과 닮았다는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져, 혹은 선택했다고 믿었던 관계들 속에서 이뤄졌던 관계들은 언제나 내가 사라지고 역할만이 남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관계였다. 즉,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않아야만 지속할 수 있었던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결국 상대와 나 자신까지 파괴로 치닫게 만든다. 상대는 좋은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나는 나 자신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뿐 아니라 좋은 관계는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나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오래 유지된다. 그래야 비로소 건강하게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희생마저 사실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가끔 뼈 아프게 느껴진다. 상대가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과 상대에게 내가 했던 사랑 역시 사랑이 아니라 의도된 연출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나는 존재해서도 안 되고, 존재할 수 없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은 가슴이 미어지게 만든다.


선택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대로 맺어진 관계 역시 기준 없이 흘러가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만으로 관계를 맡기지 않으려 한다. 따뜻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유대로 맺어진 가족의 기준은 분명하다. 사랑을 빚으로 만들지 않는 관계,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관계, 역할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멀어짐을 배신으로 해석하지 않는 관계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매일 만나지 않아도 각자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놓아주는 관계라면 그 안에 건강한 유대가 있다.


돌아보면 나는 오랫동안 감정으로 관계를 판단했다. 나를 반겨주면 가족 같다고 느꼈고, 나를 필요로 하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자주 찾는다고 해서 나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가족은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따뜻한 사람보다 건강한 사람을, 자주 찾는 사람보다 경계를 지키는 사람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나는 이제 내가 더 많이 참고, 내가 없어져야 유지되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만약 나를 일방적으로 소진시키고, 내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희생과 짐을 지우는 관계라면 그 관계가 아무리 오래되었고, 아무리 익숙하며,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할 관계가 아니다. 가족은 나를 사라지게 하는 구조가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관계를 맺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관계 안에서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관계는 나를 죄책감으로 묶고 있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하는가. 내가 없어져야 유지되는 관계인가, 아니면 내가 살아 있을 때 유지되는 관계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관계를 내 삶 안으로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결국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됐다. 내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선택 가족의 첫 번째 구성원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버린 채 누군가를 가족으로 들이려 하면, 결국 또다시 역할만 남고 나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려 한다. 나를 지키는 일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시작하기 위한 가장 작은 책임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모든 관계가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잃어야 유지되는 관계를 가족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사랑해도 서로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죄책감으로 묶지 않으며, 함께 있어도 각자로 존재할 수 있는 관계. 나는 이제 그런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혈연은 시작일 수 있지만, 내가 끝내 지켜야 할 가족은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그 선택을 이제 나 자신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비단 가족뿐 아니라 친구, 교회, 직장처럼 내가 속한 모든 관계 안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을 잘 이뤄가는 사람이 더 나아가 더 큰 집단을 잘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을 이제는 혈연이 아니라 유대로 맺어진 선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맺어가길 바란다.



3부 2.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참고 자료


목차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제: 코디펜던트 가족 탈출기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상처들

가족 체계 속 얽힘과 감정의 왜곡,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기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2부. 나의 진짜 신념을 세우기 위해 – 경계 짓기와 믿음 바로잡기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을 찾고 부수기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4부. 실천챕터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4.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에필로그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


참고자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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