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행위와 종교의례(1907)

by 숨듣다

물론 나만이 강박 신경증 환자의 이른바 ‘강박행위’가 신앙인이 신앙심을 표현할 때 행하는 의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눈치챈 첫 번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일부 강박행위가 ‘의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이미 이 유사성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단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신경증적 의례의 발생 과정을 통찰함으로써 종교적 삶의 정신작용에 대해서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강박행위나 의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강박사고, 강박적 관념, 충동 따위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나의 독립된 임상 범주를 구성하며, 여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강박신경증(Zwangsneurose)’이라는 명칭이 쓰인다. 그러나 이 병의 특이성을 이름에서 유추하려 해서는 안 된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정신병적 현상들도 ‘강박적 성격’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아직 이 신경증의 본질적 기준, 즉 내재된 핵심을 밝혀내지 못했기에, 정의보다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경증적 의례는 일상생활의 특정 행위에 덧붙여지는 작은 행위들, 부속 절차, 제약, 배열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항상 동일한 방식이거나, 일정한 법칙에 따라 반복되며 수행된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형식’처럼, 전혀 의미 없어 보인다. 환자 자신도 그렇게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생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즉각 견디기 힘든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그 때문에 생략한 절차를 반드시 다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례가 부가되는 일상의 행위들—예컨대 옷 입고 벗기, 잠자리에 들기, 생리적 욕구 해결 등—도 매우 사소하다. 예를 들어 취침 의례의 경우 다음과 같은 ‘불문율’이 있다: 의자는 침대 앞에 특정 각도로 놓여 있어야 하며, 그 위에는 옷이 일정한 순서로 접혀 있어야 한다. 이불은 발치 쪽에 단단히 끼워져 있어야 하고, 시트는 반듯하게 펴져 있어야 하며, 베개는 정해진 방식으로 배열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어야 비로소 잠들 수 있다. 가벼운 사례에서는 이러한 의례가 단순한 과잉 질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행의 엄격함과 그것을 빠뜨렸을 때의 불안은 이 절차가 마치 ‘성스러운 행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러한 행위가 방해받는 것을 환자는 거의 용납하지 않으며, 대부분 타인의 눈 앞에서 이를 행하는 것을 피한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강박행위라 불릴 수 있는 행위는 거의 모든 활동에 해당할 수 있으며, 특정한 부속 요소가 덧붙고, 반복이나 중단을 통해 리듬이 가미될 때 그렇게 된다. 의례와 ‘강박행위(Zwangshandlungen)’를 엄밀히 구분하려는 시도는 큰 의미가 없다. 대체로 강박행위는 의례에서 발전해온 것이다. 이 두 범주 외에도, 특정 행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거나, 특정한 의례를 따라야만 허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결국 강박행위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환자는 무언가를 아예 하지 못하거나, 특정 방식이 아닐 경우 그 행위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강박과 금지(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하며, 다른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는 특이하게도 처음에는 사람의 외딴 활동에만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행동에는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질병을 사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숨길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강박신경증을 앓는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많은 환자들이 이런 병을 숨기기 쉬운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하루 중 몇 시간은 마치 멜루지네(Melusine)처럼 외따로 떨어져 자기만의 신비로운 행위에 전념한 후, 나머지 시간에는 사회적 의무를 아무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증적 의례가 종교 의식의 성스러운 행위들과 유사하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유사성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나타난다: 생략할 경우 느끼는 죄책감, 모든 다른 행위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방해 금지), 그리고 아주 사소한 세부사항까지도 엄격히 지켜야 하는 정밀함. 그러나 동시에 몇몇 차이는 너무도 분명하고 두드러져서 이 비교가 신성모독처럼 느껴질 정도다. 예를 들어, 강박의례의 경우 각 개인마다 행동이 제각각이지만, 종교 의례는 정형화된 방식(기도, 무릎꿇기 등)을 따른다. 또 강박의례는 지극히 사적인 반면, 종교의식은 공개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종교적 의례의 사소한 행위들이 의미 있고 상징적인 반면, 신경증적 의례는 어리석고 무의미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강박신경증은 반쯤은 우스꽝스럽고 반쯤은 슬픈 개인 종교의 풍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조사 기법을 통해 강박행위의 내면적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 이러한 결정적인 차이점조차도 무의미해진다. 정신분석을 통해 우리는 강박행위가 어리석고 무의미하다는 겉보기 인상이 철저히 해체되며, 그 외관이 왜 그렇게 보이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강박행위는 모든 세부사항에서 의미를 지니며, 개인의 중요한 내면적 관심사들을 대변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체험과 그것에 얽힌 사고들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다른 하나는 상징적 표현이다.

즉, 강박행위는 역사적으로 해석되거나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정신분석을 통해 정신신경증을 연구해본 이라면, 강박행위나 의례가 대부분 개인의 가장 내밀한, 특히 성적인 체험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a) 내 관찰 중 한 소녀는 세수를 마친 뒤 세숫대야를 여러 번 흔들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 강박 의례의 의미는 속담에서 유래했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전에는 더러운 물을 버리지 말라.” 그녀는 이 행동을 통해, 언니가 불행한 남편과 이혼하기 전에 더 나은 사람과의 관계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b) 남편과 별거 중인 어떤 여성은 식사할 때 늘 가장 좋은 부분을 남기고, 예를 들어 고기에서는 가장자리만 먹었다. 이 금욕적 행위는 정확히 그날 생겨났는데, 바로 그녀가 남편과의 성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즉, 최고의 것을 포기한 것이다.


c) 같은 환자는 특정 의자에서만 앉을 수 있었고, 그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했다. 그 의자는, 그녀의 결혼 생활의 특정한 세부 사항과 연관되어, 그녀에게 남편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박을 다음 문장으로 설명했다: “한번 앉았던 (남자나 의자)에서 떠나는 일은 정말 힘들다.”


d) 그녀는 한동안 특히 눈에 띄고 무의미한 강박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자신의 방에서 나가 다른 방으로 가서, 그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 위의 식탁보를 일정한 방식으로 고쳐놓은 뒤, 하녀를 호출해 탁자로 오게 하고는, 아무 의미 없는 심부름을 시켜 다시 돌려보냈다. 이 강박의 의미를 분석하려는 과정에서 그녀는 식탁보의 한 자리에 색이 변한 얼룩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매번 그 얼룩이 하녀의 눈에 띄도록 식탁보를 조정하고 있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이 강박은 그녀의 결혼생활에서 겪었던 한 사건을 재현한 것이었다. 신혼 첫날밤, 그녀의 남편은 비교적 흔한 문제로 인해 성기능 장애를 겪었다. 그는 반복해서 자신의 방에서 그녀의 방으로 달려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하녀가 침대를 정리할 것을 걱정하며, 붉은 잉크 병을 집어 들고 침대보 위에 그 내용을 부었다. 하지만 붉은 얼룩은 그가 의도한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곳에 생겨버렸다. 그녀는 이 강박 행위를 통해 ‘신혼 첫날밤’을 재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탁자와 침대’는 곧 ‘결혼생활’을 의미한다.


e) 그녀는 또한 모든 지폐를 사용하기 전에 그 번호를 적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 행동 역시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남편을 떠나 믿을 수 있는 다른 남자를 만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때, 한 온천 휴양지에서 한 신사의 정중한 접근을 받아들였다. 그가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날 그녀가 잔돈이 부족하자 그는 친절하게 5크로넨 지폐 한 장으로 환전해주었다. 그는 그 지폐를 주머니에 넣으며, “이건 당신 손을 거쳤으니 이제 절대 떠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이후 만남 속에서 그녀는 그 지폐를 보여달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지만, 동전과 달리 지폐는 동일한 액면이라도 식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생긴 미해결의 의심이, 그녀로 하여금 모든 지폐의 고유번호를 적도록 하는 강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몇 가지 예시는 강박행동이 전적으로 의미 있고 해석 가능하다는 명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논리는 강박 의례에도 적용된다. 다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할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강박행동의 설명이 종교적 사고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강박을 따르는 사람은 그 의미, 적어도 그 핵심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 행동을 수행한다는 점이 질병의 조건 중 하나이다. 정신분석적 치료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강박행동의 의미와 그것을 유도한 동기가 의식화된다. 우리는 이를 “강박행동은 무의식적 동기와 사고의 표현이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종교적 실천과의 또 다른 차이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신자 개인 역시 대부분 자신이 수행하는 의례의 의미를 묻지 않고 받아들인다. 단지 사제나 연구자는 그 의식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을 뿐이다. 종교적 실천을 유도하는 동기도 일반 신자에게는 의식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대개 표면적인 동기로 대체되어 있다.


강박행동에 대한 정신분석은 그 원인을 어느 정도 밝히고, 그 행동에 작용하는 동기의 연결 구조를 이해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강박과 금지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죄책감—즉 무의식적 죄책감—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죄책감은 유년기의 어떤 정신적 사건에서 기원하며, 이후 새로운 유혹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살아나고, 항상 잠재된 불안, 재앙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어낸다. 이 불안은 처벌이라는 개념과 함께, 유혹의 내면적 지각에 연결되어 있다.


강박 의례 형성의 초기에, 환자는 여전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떤 재앙이 닥칠지에 대해서도 의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불안이 발생한 원인과 그 불안이 위협하는 내용 간의 직접적 연결은 환자의 의식에서 사라진다. 강박 의례는 이렇게 하여 방어 혹은 보호 조치로 시작된다.


강박신경증 환자의 죄책감은, 신자가 “나는 마음속으로 큰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대응된다. 그리고 이들이 수행하는 기도나 의식은 마치 강박 환자의 보호 조치처럼, 하루의 모든 행위—특히 비범한 사건—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행해지는 정화와 방어의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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