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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아 Oct 25. 2024

귀신이 고칼로리 07

상아 경장편 소설

학교처럼 어린 아이들의 기운이 가득 차 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공간은 무언가 고여있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곳에서 금기시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영혼을 불러들이기에 완벽한 행동이다.




“해주, 안녕.”


“안녕, 하리야.”


이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중학생 때의 소문을 들은 몇몇이 힐끔거리지만 교실 문을 열면 하리의 우렁찬 인사가 반겨주고 하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친구들도 손을 흔든다. 

해주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초코바를 받는 자세도 자연스러워졌다. 바로 포장을 까서 한입에 넣은 해주가 방긋 웃었다. 하리의 시선이 해주 등 너머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오늘도 귀신들이 붙지 않은 것 같았다.


“얘들아. 음악실 공사 끝났다고 오늘부터 구관으로 가래.”


“아 구관 졸라 멀잖아!”


교무실에 들렀다가 온 반장의 전달에 모두 투덜거렸다. 

하리네 반은 신관 3층이었고 리모델링 중이었던 음악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구관 4층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쉬는 시간이 짧은데 멀리까지 가게 되었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당연했다. 반장은 자신에게 무슨 힘이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차례 소란이 지나가는 동안 하리는 창문 너머 보이는 구관을 노려봤다. 구관은 입학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현재 하리의 학교는 3학년만 구관을 사용하고 1, 2학년은 신관을 쓰고 있다. 음악실, 미술실, 동아리실 등 특별실이 구관에 몰려 있었지만 3학년의 면학 분위기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1, 2학년 전용 특별실이 신관에도 만들어졌다. 이번 학기처럼 다른 반과 수업이 겹치는 경우에만 구관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두 건물은 강당과 급식실을 옆구리에 낀 채 운동장을 중앙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였기에 가끔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수업을 듣는 3학년 교실이 보였다. 

하리가 구관을 꺼리는 이유는 복도 끄트머리에 있는 화장실 때문이었다. 유독 조명이 어둡고 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해주는 괜찮을까? 하리는 열심히 졸고 있는 짝을 한 번 쳐다보고 자신이 더 잘 챙겨야겠다며 작은 다짐을 했다.     


“아 유도희 진짜 미쳤나. 왜 또 지랄이야?”


“쟤 욱하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못 참아.”


오전부터 국사, 수학, 물리까지 빡빡한 과목들이 몰려 있어 쉬는 시간마다 엎드리던 하리가 짜증 섞인 외침에 슬쩍 몸을 일으켰다. 매번 투닥거리는 무리였다. 돌아가면서 한 명을 욕하고 갈등이 해결되면 또 다른 애가 타겟이 되면서 싸우는데도 계속 어울리는 사이였다. 하리는 다수와 두루두루 친했지만 단짝 친구는 없었기에 저 무리의 끈끈함이 신기했다. 오늘 이렇게 싸워도 며칠 뒤면 다시 붙어 다닐 것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보는 해주를 가볍게 톡 친 뒤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저런 소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엔 고등학생에게는 쉬는 시간 단잠이 더 소중했다. 


“하리야. 음악실 리모델링은 왜 한 거야? 깨끗했던 것 같은데.” 


휴학 전에 수업을 들었던 음악실을 떠올린 해주가 물었다. 


“글쎄? 뭐 학교가 그런 거 학생들한테 다 알려주진 않으니까. 그냥 시설 개선이라고 한 듯? 구관 건물 자체가 낡았잖아.”


고소하게 무쳐진 시금치를 씹으며 하리가 덧붙였다.


“그러면 뭐 해. 진짜로 손 봐야 하는 곳은 그냥 놔두는걸.”


“진짜로 손봐야 할 곳?”


“해주야. 너 구관 2층 화장실은 웬만하면 가지마.”


자세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뉘앙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있구나. 괜히 한기가 느껴져 팔에 소름이 돋았다. 하리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에 해주는 덩달아 굳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와 구관 진짜 오랜만이다. 작년에 우리 반은 미술도 신관에서 했거든.”


“그래? 우리는 구관이었는데. 여기 미술실 이상한 냄새 쩔어.”


교과서와 필통을 품에 안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음악실로 향했다. 하리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고 해주는 그에 맞춰 보폭을 좁히고 속도를 올렸다.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모습이 엄마 오리를 쫓아가는 새끼 오리 같았다. 그 희한한 조합은 반 친구들에게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둘은 단짝으로 받아들여졌고 음악실에 도착해서도 서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해주가 새삼스럽게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와중에 옆에서 옅은 머스크향이 풍겼다. 낯선 얼굴이 해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유도희야. 알지?”


하얗고 작은 손이 내밀어졌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는 반대로 크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체육 시간에는 거의 날아다녔던 것 같아. 

하리의 시선이 느껴지자 용기가 생긴 해주가 도희의 손을 맞잡았다. 도희의 손은 뜨거웠는데 시선은 서늘했다. 구석구석 발가벗겨지는 느낌에 살그머니 손을 빼자 언제 쳐다봤냐는 듯 눈길이 떨어져 나갔다. 조금 이상한 애인가 싶어 해주는 수업 내내 옆자리가 신경 쓰였다.


“자, 그럼 다시 설명해준다. 같은 줄에 앉은 사람들끼리 한 조가 되는 거고 자유곡으로 수행평가 볼 거니까 준비해.”


아이들의 야유에도 선생님은 칼같이 말을 이었다.


“파트 나누다가 어려우면 물어보고. 수업 끝.”


딱 맞춰 종이 울렸고 울상을 지은 아이들, 교과서를 들고 달려가는 아이들, 조별로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멀뚱멀뚱하게 앉아 있는 건 하리와 해주 그리고 도희뿐이었다.


“우리도 곡부터 정할까?”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하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해주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적고 있는 도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도희를 대신해서 하리가 민망하지 않도록 얼른 아이디어를 냈다.


“교, 교과서에 있는 곡으로 할까?”


“버터플라이 어때?”


어느새 둘을 쳐다보며 툭 던지듯 말하는 도희에게 하리의 시선이 짧게 닿았다. 가요를 잘 모르는 해주로서는 어떤 곡이든 비슷하게 부담스러웠으니 두 사람의 의견을 따를 작정이었다. 하리가 천천히 끄덕이며 동의했다.


“화음도 나뉘어 있고 괜찮은 거 같아. 그럼 내가 메조 소프라노 해도 돼?”


“응. 내가 알토. 구해주는 소프라노.”


순식간에 역할까지 정해지자 도희는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하리도 음악실을 빠져나갔고 눈치를 보던 해주가 허둥지둥 하리를 쫓았다. 


복도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각 층 화장실을 지나게 된다. 2층에 다다랐을 때 하리의 당부가 떠올라 해주는 자신도 모르게 힐끗 화장실을 쳐다봤다. 멀리서 해주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구해주!”


누군가가 강하게 어깨를 붙잡았다. 해주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짐을 떨어뜨렸고 복도에 흩어진 책과 노트를 주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너 괜찮아?”


“어…. 내가 왜 여기 있어?”


분명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해주는 2층 화장실 코앞에 서 있었다.


“너 내려오는 소리가 안 들려서 보니까 화장실 쪽으로 가는 거야. 얼른 오라고 했는데도 못 듣는 거 같았어.”


“무슨 일이 났나 싶어서 내가 붙잡은 거고.”


도희가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덧붙였다. 이상하게 보였을까 덜컥 겁이 난 해주는 은근슬쩍 하리 옆에 붙었다. 도희는 고개를 기울였고 하리는 해주를 살피느라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뭐 있지?”


어느 정도 확신에 찬 말투였다. 그제야 도희 쪽으로 몸을 돌린 하리가 잠시 망설이다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도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한테도 얘기해 줄 수 있어?”


목적어가 없는 질문에 하리와 해주가 서로를 마주 봤다. 표정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 도희는 여전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귀신 말이야. 난 안 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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