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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18

뜻밖의 만남





포근한 날씨를 띄고 있었던 토요일 오후. 남자는 늘 그렇듯 다운타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장면들을 찾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날 조금 이른 시간부터 밖을 나다녔던 그는 사람들이 가볍게 와인 한두 잔을 즐기기 위해 가게를 들어설 때 즈음 이미 크게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쇼핑몰이 붙어있던 번화가 중심부 쪽을 걷고 있었고, 캘거리 타워가 오른편에 놓여 있던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반대편에서 낯익은 옷차림과 카메라를 들고 있던 한 남자를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이전에 동일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을 계기로 종종 함께 시간을 보냈던 현지인 친구. 셰프였던 그는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갈색 반다나의 매듭을 새로 지어 다시 머리에 둘러쓴 그는 남자에게 오늘 다른 일정이 없다면 조금 뒤에 있을 포토그래퍼 모임에 같이 갈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이후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지나가다 가끔 만난 게 전부였고, 애초에 이런 커뮤니티 활동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한번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두 남자는 번화가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같이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다. 이미 여러 번 발자취를 남겼었지만 오랜 시간 이 도시에서 살아왔던 친구의 디테일한 설명 덕분에 TMI에 조금 가까운, 하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반 강제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숨겨져 있던 스폿들을 소개해주며 후에 그가 다시 이곳을 찾아올 여지까지 만들어 주었다. 



1시간 여의 시간이 지나고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보도 옆에 주차되어 있던 하얀색 올드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걸 허락 없이 찍어도 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차량의 주인이 나타나 그들에게 편히 구경하라는 말을 건넸다. 카우보이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 그리고 덥수룩한 흰색 수염까지. 클래식 '캘거리안' 그 자체였던 노년의 남자는 너털웃음을 보이며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로 그들의 뒤에 서서 가끔씩 자신의 애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대부분의 대답은 그의 친구의 몫이었다.







그렇게 작은 공립도서관 앞에 도착한 둘은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한두 명씩 각자의 카메라를 어깨와 목에 맨 채로 다가왔고,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과 구면이었던 친구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서 남자를 그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인원수 체크와 함께 적당한 수다를 마무리하고 그룹은 정해져 있던 루트를 따라 이동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 나갔다.



이런 모임이 생전 처음이었던 까닭에 그는 어색함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대상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중간중간 좋은 배경을 발견하면 서로가 서로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셔터를 눌렀고, 결과물을 공유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장면 또한 그에게 있어 흔치 않은 일이었음에도 최대한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울리려 했다. 







결과물에서도 혼자서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보통 같았으면 지나칠 법했던 모습들도 마음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큰 고민 없이 데이터로 저장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직후였던 것 또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웃으며 친구를 따라 모임에 오긴 했지만, 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계속해서 이게 과연 본인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을 해 가며 기록을 이어왔던 그에게 이 시간은 잠깐 그 터널을 벗어날 정도의 휴식을 제공해 주었다. 매번 참석을 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가끔씩 이렇게 한숨 돌릴 겸 동행을 하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오후 4시 정도가 되어 그들은 근처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를 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까워질 수 있었고, 후에 캘거리를 벗어나 근처로 같이 하이킹을 가자는 사람들의 의견에 그 자리에서 다 같이 대략적인 일정을 짰다. 아직까지 캘거리 바깥쪽으로 여행을 가보지 못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했고, 식당을 나와 소셜 미디어 링크를 건네받고 나서 그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에 역으로 향했다.




"오늘 모임 어땠어? 솔직히 난 네가 같이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선뜻 간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 



같은 지역 쪽에 살고 있던 그의 친구가 열차를 타고 가며 말했다. 그는 본인이 느꼈던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고, 덕분에 즐거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서 기쁘다고 했던 그는 자신이 한동안 좀 바쁠 예정이어서 모임에 자주 참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남자는 이제 막 여름 시즌이 시작되었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먼저 열차에서 내렸다. 다소 이른 시간 집으로 돌아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여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기운이 평소보다 더 빨리 고갈됐던 탓에 그는 매일 지나치는 역 앞 커다란 타워를 등지고서 집으로 마저 걸음을 옮겼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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