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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2

첫 솔로트립




5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기 며칠 전, 남자는 잠시 캘거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노트북 앞에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원래는 6월 중순쯤, 정확히 말하면 캘거리 스탬피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갔다 오자는 생각을 했지만 주변에 있던 모든 호텔의 예약들이 6월부터 9월까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급하게 일정을 앞당겼다. 다소 급작스럽게 잡힌 스케줄과 더불어 캘거리에서의 첫 솔로 트립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주말 내내 정신이 없었던 그. 운이 좋게도 다가올 한 주간의 날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제외하고 모두 맑을 것이라는 예보가 쓰여 있었다.




"저 갔다 올게요~ 문제 생기면 전화드릴게요~" 



"운전 조심해라~"



월요일 아침이 되자 그는 짐들을 챙겨 호스트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운타운 안쪽에 렌터카 업체가 자리 잡고 있어서 열차를 타고 10여 분 정도를 걸어 도착할 수 있었던 남자는 예약했던 픽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들어서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직원에게 자신의 예약확인서와 운전면허증, 그리고 신용카드를 건네준 뒤, 보증금 결제를 마치고 나서 잠시 앉아 차량을 기다렸다.




"너에게 옵션이 3가지가 있어. 이 중에서 어떤 걸 끌고 갈래?"



"어.. 사실 내가 한국에서 왔는데, 저 모델이 내가 회사생활을 할 때 몰았던 차거든. 저걸로 해도 될까?"



"잘 됐네. 익숙한 게 좋지 뭐. 바로 준비해 줄게."







오랜만에 앉았던 운전석이 꽤나 어색했던 것도 잠시, 몇 가지의 세팅을 마친 후 엑셀레이터를 밟자 그는 몸을 싣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긴장이 풀어짐과 동시에 어제까지 몰았던 차량인 것 마냥 편안함을 느꼈다. 물론 조금은 다른 캐나다의 교통법규 몇 가지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여 이제 갓 면허를 딴 사람처럼 운전을 했던 탓에 현지인들은 연신 그를 추월해 지나갔다. 뭐 아무렴 어떤가? 무사고가 베스트 드라이버의 척도라고 여겨왔던 남자는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지정해 놓았던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릴 뿐이었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져 있던 들판을 배경으로 1시간 여 정도 가다 보니 이날의 첫 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친구들이 추천해 주었던 이곳은 남자가 묵을 숙소에서 4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주민이 30명도 채 살지 않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일반인들이나 관광업체로부터 추천을 받았다면 절대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그런 동네였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이어서 그런 지 그가 원하는 그림에 맞는 아주 적절한 장소를 소개해 주었다. 



남자는 마을 중심부로 보였던 곳에 주차를 하고 나서 잠시 가게에 들어가 생수 2병을 구매해 곧바로 목을 축였다. 캘거리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해 있던 이곳은 평균 기온이 2-3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체감되는 열기는 훨씬 크게 느껴졌다. 스마트폰의 신호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끊기는 바람에 그는 녹이 잔뜩 슬어있던 곳곳의 푯말들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기록했다. 살면서 본 적 없던 특이한 지형들이 만들어낸 텍스처와 레이어들은 프레임 안에 신선한 이미지들로 담아내어졌고, 그는 우연히 발견한 짧은 트레킹 코스를 따라 정상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내려와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마을을 떠났다. 







중간에 관광명소로 만들어 놓았던 탄광촌에 들러 잠시 구경을 한 뒤에 남자는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마을에 멈춰 섰다. 이곳은 아까 방문했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공식 인구수가 3명으로 집계되어 있어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장소였다. 이런 곳들을 위주로 여행 계획을 짠 것은 아니었지만, 유명했던 협곡 외에 주변 지역들은 상당수가 황폐화되었거나 버려져 있었기에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쓰고 싶었던 그는 중간중간 이런 장소들을 리스트에 넣음으로써 그 효율을 극대화했다. 



풀밭에 방치되어 있던 올드카, 뼈대만 간신이 유지하고 있는 폐건물, 비상용으로 구비해 놓았던 것처럼 보였던 여러 대의 무전기들까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묻어있던 이 마을은 해가 약간씩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까지 했다. 날씨 또한 조금씩 쌀쌀해지면서 그는 이제 체크인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에 올라 타 내비게이션에 숙소를 입력하고 핸들을 돌렸다. 







작은 규모의 다운타운에서 약간 떨어져 있던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자신의 짐들을 방 안에 넣은 남자는 곧바로 다시 차를 몰아 마을의 중심부로 향했다. 주변에는 걸어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침대에 누워 몸이 늘어지는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거대한 공룡 모형이 세워져 있던 인포메이션 센터를 지나 그는 마을 초입 쪽에 주차를 하고 패스트푸드 점으로 들어갔다. 다른 메뉴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포장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던 탓에 별 수가 없었다. 주문했던 세트에 포함된 감자튀김을 다 먹을 때 즈음 밖에서는 몇 차례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마무리되어서 이제 좀 여유를 즐기려 했었는데, 잔뜩 쏟아질 것 같았던 빗방울에 몸을 적시기는 싫었던 남자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부리나케 식사를 마친 뒤 방 안으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거리는 소음을 내는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맞추고서 그는 샤워를 마치고 백팩 안에 들어있던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켰다. 오늘 찍었던 파일들을 모두 다 옮기자마자 침대에 파묻힌 그는 카메라 충전기와 알람을 한번 더 확인한 뒤에 모든 불을 껐다. 더위와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해 몸과 멘탈 모두 지쳤던 그는 귀에 거슬릴 법 한 에어컨 소리에도 불구하고 5분이 채 안 되어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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