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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1

El Clásico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서 올드카들이 모이는데, 이번주가 이 모임의 10번째 시즌을 시작하는 날이어서 꽤나 볼만할 거야. 시간 되면 여기서 보자고."  



며칠 전 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남자는 열차를 타고 그가 알려주었던 위치로 향하고 있었다. 다운타운과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8-90 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올 법한 올드카들을 본 적은 있었지만 관리가 잘 된 차량들을 목격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런 문화를 경험해 보는 것 또한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곧장 답장을 보냈던 그였다. 특히나 이 분야에 상당히 빠삭했던 그의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 알차게 이 행사를 즐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오후 5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조금 거리가 있었기에 점심을 먹고 잠시 도서관에 들러 간단한 서류 작업을 마치자마자 그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고 가기에도 애매했던 위치여서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려 40분 정도를 걷다 보니 넓은 주차장을 가진 햄버거 가게가 그의 눈에 작게나마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름 철저한 플랜맨이었던 그의 철두철미한 시간계획 덕분에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몇몇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져 있던 올드카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서 구경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도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었지만, 그런 그의 상상 이상으로 대부분의 차량들은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연식과 함께 요즘 나오는 모델들과는 많이 다른, 그 당시의 시대상과 감성을 잘 담고 있던 디자인과 색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입장에서 이런 이벤트가 더욱 놀랍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가 구상했던 계획에 이러한 장면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서부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생뚱맞게 이곳 캘거리에서 목격을 하다니! 



여기가 별천지구나 하며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사진을 찍고 있던 남자에게 소유주들은 자신의 차량을 소개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조금은 귀찮은 일일 법했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던 금요일 오후에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은 전혀 나쁠 게 없었기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몇몇 전문용어들을 걸러내 가며 그는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캘거리에는 왜 이런 차량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앨버타 주가 다른 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 한 편이야. 그러다 보니 하나둘씩 이 도시로 모여들어서 이런 커뮤니티 문화가 활성화 됐지." 



"오.. 전혀 몰랐어요. 전 가끔 지나가다가 한두 번 봤던 게 전부인데, 따로 이유가 있었네요."



"지금도 날씨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야. 조금 더 지나고 나면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겨울 시즌 내내 차고에 넣어놓고 있다가 여름철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자신의 애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는 거지. 이것도 나름 '캘거리 특수'라고 하하."



그렇게 1시간 동안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차량들로 인해 주차장의 모든 칸들은 빠르게 만석이 됐고, 아까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델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가 나타나 남자의 등에 손을 올렸다.




"나쁘지 않지? 8시까지 진행하니까 둘러보는 데는 충분할 거야." 



"여기 진짜 X 되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거든. 이렇게까지 종류가 다양할 줄도 몰랐지." 



"야 인마. 그저 그런 쇼였으면 내가 너에게 이 먼 곳까지 오라고 했겠냐? 나도 나름 이곳에서 산 지 30년이 넘었다고. 특히 차와 관련되서는 믿을만하니까 나중에 다른 곳도 같이 가자고." 


 


  



저녁 식사 시간에 가까워지자 몇몇 차량들은 먼저 자리를 떠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남자 또한 이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친구에게 말을 걸려 했는데, 갑자기 한쪽 구석에 쳐져 있던 간이 텐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새로운 이벤트가 있나 싶어 그도 벤치에서 일어나 같이 그 틈에 끼어들었고, 이 모임의 주최자로 보였던 한 남자가 텐트 밖으로 나와 확성기에 입을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주차장이 꽉 찬 게 아주 보기 좋네요. 한 친구를 따라 올드카 쇼에 간 이후에 무작정 이 모임을 만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됐네요.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부터 경품 추첨을 진행할 예정이니 티켓을 구매하신 분들은 이 쪽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해당되지 않는 분들은 남은 시간 편하게 구경하다가 가시고요!" 



남자는 따로 티켓을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친구가 무려 5개를 가지고 있었기에 둘은 같이 기대를 하며 호명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모두 꽝. 모든 당첨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나자마자 사람들은 일제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친구의 차에 같이 올라 탄 남자 또한 아까 내렸던 역으로 향하면서 그와 못다 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좀 많이 찍었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될 것 같네. 200장은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이거 다 작업하려면 반나절은 노트북 앞에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아." 



"잘 됐네. 가끔씩 이런 행사 있으면 계속 연락 줄게. 돌아가기 전에 최대한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남자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차 문을 닫았다. 열차 선로를 가로질러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차량을 뒤로하고 그는 5분 뒤 도착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다운타운 방향 열차를 기다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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