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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0

어둠 속에 나 홀로





새벽 3시가 넘어서도 남자의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 보면 늦게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지만, 이 날 그는 1년의 사진 계획 중 하나였던 새벽의 거리촬영을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몇 시간 정도 눈을 붙이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였음에도 그는 본인이 몇 번 팔을 휘적인 뒤에 다시 잠에 빠져들 사람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무식한(?) 방식을 택했다.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어 칠흑 같은 어둠을 확인하고 나서 그는 집을 나섰다. 해가 떠있는 시간대에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도 후덥지근했던 날씨였지만, 5월 중순 캘거리 새벽의 밤공기는 상당히 쌀쌀했다. 청바지와 바람막이를 둘렀음에도 그의 몸은 한기를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물론 그 덕분에 약간 침체되어 있던 정신이 깨어났던 것은 꽤나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했지만..



예상대로 그의 집 앞 상점들은 편의점을 제외하고 모두 상호가 쓰여 있던 간판들만이 불을 반짝이고 있었다. 특유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 전원을 켜서 여러 방향으로 구도를 잡아보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삼각대 없이 찍는 촬영이었던 탓에 이미지에 노이즈가 잔뜩 끼었지만, 그로 인해 더 짙어졌던 분위기와 더불어 이 날, 이 시간, 이 장소를 담고자 했던 그의 궁극적인 목적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대로로 향했다. 지난번 야간에 도보로 지나왔었던, 햄버거 가게와 여러 주유소가 줄지어 놓여 있던 그곳이 바로 오늘의 메인 포인트였다. 한동안 계속 걸으면서 몸이 적당히 데워졌을 때 즈음 닿았던 이 거리 또한 수많은 차량들과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채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도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괜히 노숙자들이 자신을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였지만, 시간이 시간이었던 지라 그들도 잠에 들었는지 보행로 위에는 남자만이 홀로 서 있었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더 자유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덕분에 단편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각 피사체들마다 다른 각도와 원근감을 표현하기에 용이했다. 아주 간간이 그의 등 뒤를 지나가는 택시와 응급구조차량, 자재 배송 트럭들을 제외하면 도로변으로 나가도 전혀 위험할 게 없었기에 이런 이점들을 최대한 살린 이미지들을 한 장씩 더해가며 남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도대체 어떤 동기가 그를 이 시간에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미디어에서 많은 작가들이 이런 류의 사진을 유행시켰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너는 안 하거나 못하는 것을 나는 했다!"라는 알량한 우월감을 가지고 싶었던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그냥 나는 이게 좋아서." 일 것이다. 그가 과거부터 기록해 왔던 많은 사진들이 이런 대답에 진정성을 더해주기에는 충분했고, "어떤 사람이 물질적인 결과물을 바라지 않고 행위를 할까?"라는 물음을 던져본다면 그 답은 더욱더 명확해질 것이 분명했다.







노란색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던 정비소를 끝으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 남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까지도 조금 이르게 느껴졌던 새벽 5시였지만 하늘은 벌써부터 조금씩 회색빛과 보랏빛의 중간 정도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차량들은 확연히 늘어나 아까는 잘 들리지 않던 배기음을 내고 있었고, 교차로에는 사람들이 출근을 위해 잠에 덜 깬 듯한 모습을 하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집 앞 편의점을 지나칠 때에 맞춰 남자의 위장 또한 이른 허기짐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왕복 10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일이었다. 결국 편의점에 들러 사이다 한 병과 자잘한 주전부리들을 구매한 남자는 호스트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곧바로 약간의 시장기를 달래 줄 음식물들을 입 안으로 채워 넣었다. 남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서 그는 양치와 함께 간단히 몸을 닦고 난 뒤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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