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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Feb 21. 2024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40

파이널 스테이지





"생각 있으면 카메라 들고 6시 반까지 이쪽으로 와. 티켓 남았으니까 공짜로 들여보내 줄게."



크리스마스가 2주 앞으로 다가온 평일 아침, 그의 스마트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추수감사절 파티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자주 연락이 닿았던 한국계 캐나다인 친구였다. 그는 캘거리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고, 종종 남자에게 이런저런 이벤트들을 공유해 주거나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등, 여러 방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래서 밖에 나오면 결국 인맥이 전부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게 아닐까? 내년 여름 즈음에 한국에 온다 했으니 한 번 정도 이에 대한 보답을 할 기회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였다. 



하던 일을 얼추 마무리하고 그는 옷을 갈아입기 전에 현재 날씨를 확인했다. 11월부터 추위와 거센 눈발을 걱정했지만 올해의 캘거리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12월 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영상 7도라니! 꺼내려던 패딩 재킷을 다시 옷장에 넣어놓고 한국에서 가을철에 입던 옷으로 탈바꿈하고서 그는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럼에도 그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몇 장의 휴지가 꼬깃꼬깃 넣어져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반응해 떨어지는 콧물을 닦아내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조금 이르게 도착해 친구가 운영하는 센터에 먼저 들른 그는 사람들을 도와 같이 짐을 들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운타운 번화가 중심에 'PALACE'라는 사인을 반짝이고 있던 곳이 바로 이날의 장소. 이전부터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 한번쯤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는데 결국 이런 기회를 통해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던 그는 예상보다 훨씬 깔끔했던 내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둘씩 세팅이 마무리될 때 즈음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비췄다. 확실히 캘거리는 작은 동네라는 게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체감이 됐는데, 2월 말부터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던 남자 입장에서도 이제는 'A 친구 B, B친구 C, C 친구 A'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더군다나 올해를 장식하는 마지막 공연의 느낌이 강했던 덕에 다들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더욱더 자리에 함께하려 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연장 주변은 각기 다른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객들로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다.







8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됐던 이벤트에 특별한 형식은 없었다. 이른바 Jam Session이라고 불리는, 각 파트의 뮤지션들이 올라와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면서 공연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다들 워낙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어서 흐름이 끊기지 않았던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와중에 그의 친구는 자신의 센터를 홍보하느라 바빴던 바람에 남자에게 사진을 부탁한다며 약간의 압박감(?)을 심어주었지만, 늘 그렇듯 그는 개의치 않고 무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음악소리가 멈출 때까지 계속 셔터를 눌렀다. 중간중간 같이 어울려 음악을 즐겼던 것은 덤.







"혹시 나도 무대 위에 올라가도 돼?"



"그럼! 케이블만 조심하고 연주에 방해만 안 되게 찍으면 상관없어!" 



연주가 막을 내리기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았을 때부터 남자는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을 담기 위해 무대로 올랐다. 다른 이벤트였다면 절대 시도해 볼 엄두조차 못 냈을 테지만 날이 날인만큼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사실 말을 거창하게 써 놓았지만 이미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그보다 먼저 스테이지를 밟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 같이 느껴졌던 3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관객들이 대부분 자리를 떠나고 나서부터 그와 친구들은 다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야ㅋㅋ 지금 12월 맞냐? 무슨 여름철 같아." 



"니들이 캘거리 겨울 겁나 춥다며! 괜히 쫄았네 진짜." 



"올해 진짜 이상하다니까. 지구가 맛이 가긴 갔나 봐. 지난 3년은 그렇게 춥더니 참." 



상당히 가볍게 입고 나왔음에도 수레를 끌고 센터로 돌아가면서까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날 밤은 몹시 따뜻했다. 본인이 날씨 운이 좋다고 으스대야 할지, 아니면 이 행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지 왔다 갔다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와 친구들은 그들의 텅 빈 위장을 채워 줄 야식 메뉴를 고르는 데 더욱 집중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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